미국 자동차업체 포드가 2021년부터 핸들과 가속 페달이 없는 ‘완전 자율주행차’를 대량 생산한다고 합니다.
무슨 얘기인지 와닿지 않는다고요?
현재 운전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양손은 핸들에 올려놓고, 오른 발은 브레이크나 가속 페달을 밟고 있죠. 눈은 쉴새 없이 전후좌우를 살핍니다. 그런데 불과 5년 후면 운전자는 가만히 좌석에 앉아만 있어도 차가 굴러간다는 겁니다. 운전면허도 굳이 필요 없어지겠네요. 차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요.
이제 좀 와닿나요?
이는 113년 전 헨리 포드가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전통 자동차를 대량 생산한 이래 최대의 혁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포드는 자동차 조립 공정에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해 많은 차를 빨리 생산할 수 있게 함으로써 20세기 산업과 경영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습니다. 그 혁신의 뿌리 덕분에 세계 대공황 속에서도 살아남았고,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무너질 때도 꿋꿋하게 자력으로 버티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런 회사가 완전 자율주행차를 양산한다고 하니 믿음이 갑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GM 폭스바겐 BMW 닛산 등 많은 자동차 업체들이 5년 안에 자율주행차를 개발한다고 했지만 포드가 가장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놨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렇다면, 캘리포니아 주 팰로앨토에서 탄생한 전기차업체 테슬라모터스로 얘기를 바꿔봅니다.
테슬라는 요즘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언론의 메인 페이지 일각을 장식합니다. 낭보만 전해지면 좋겠는데 그렇지가 않네요.
지난 5월 미국에서 ‘오토파일럿’ 모드로 달리던 테슬라 전기차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실이 뒤늦게 발표됐습니다. 얼마 전에는 중국에서도 한 남성이 오토파일럿 모드로 주행 중에 사고를 일으켰다고 하네요. 이 때문에 테슬라의 오토파일럿 기능에 대한 과대 광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뜨끔했던 것일까요? 테슬라가 중국 웹사이트에서 문제의 ‘오토파일럿’이란 단어를 삭제했다가 되돌려놓은 사실이 들통이 났고, 또 자율주행(self-driving)이라는 뜻으로 쓰일 수 있는 중국 단어 ‘자동운전(쯔둥자스)’을 ‘자동보조운전’이란 의미의 문구로 바꿨다네요.
오토파일럿은 항공기의 자동항법장치를 뜻하는데요. 그동안 테슬라 차량 소유자들은 이를 자율주행으로 이해해왔는데, 테슬라는 이것이 고속도로에서 차량이 스스로 조종과 제동을 하는 보조적인 기능일 뿐 자율주행이라고 한 적이 없다고 발뺌을 하네요.
그렇다 칩시다.
지난달에는 엘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폭탄 선언을 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극비 마스터플랜 파트2를 발표할 거라고요.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깜깜 무소식입디다. 그러다가 열흘 만에 마스터플랜 파트2가 공개됐는데, 내용인 즉, 인간이 운전하는 것보다 10배 안전한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미국인이 선호하는 픽업트럭과 다양한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을 전기차 버전으로 대량 생산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10년 만에 내놓은 극비 마스터플랜 치고는 참 김 새는 내용이었습니다. 새로울 게 없다는 것이지요. 전문가들도 그랬습니다. 전통차 업체들이 이미 다 하고 있는 것들이라고요.
실제로 지금은 모든 차업체들이 전기차를 만들고 있고, 심지어 실리콘밸리의 내로라하는 정보·기술(IT) 업체들과 손잡고 커넥티드카를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이 운전하는 것보다 10배 안전한 자율주행차’에 대해 말장난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테슬라가 2008년에 첫 번째 전기 스포츠카 ‘로드스터’를 내놨을 때만 해도 전기차는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테슬라도 신선 그 자체였지요. 디트로이트가 아닌, 실리콘밸리에 있는 자동차 업체여서도 그랬지만 제조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기존의 방식을 깨는 것이었으니까요. 로드스터를 시작으로 로드스터 스포츠, 모델S 시리즈, 모델X 시리즈가 완판 행진을 거듭하면서 테슬라의 존재감도 커졌습니다. 전통차 업계에도 어느새 ‘전기차’가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금융위기의 파고를 헤치고 나온 전통차 업체들은 앞다퉈 실리콘밸리에 연구 기지를 만들고, 거대 자본력과 자동차 제조에서 쌓아온 오랜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래형 자동차 개발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결실이, 포드처럼 수년 후 미래형 자동차를 양산할 수 있게끔 된 것으로 맺힌 것이지요. 테슬라가 ‘인간이 주행하는 것보다 10배 안전한 자율주행차’를 내놓을 때 쯤이면 전통차 업체들은 100배는 더 안전한 제품을 내놓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본’이란 게 이래서 중요한 것 같습니다. 테슬라와 애플도 한때는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이들이 기존의 개념을 깨는 신제품을 들고 나왔을 때 기존 산업계가 갖는 위기감은 적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100여년 역사를 가진 전통 산업의 저력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닌가 봅니다. 1세기 넘게 온갖 위기를 경험하고 그것을 극복해온 저력은 생긴지 얼마 안된 기업이 참신한 아이디어만으로 경쟁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지요.
산업계는 IT를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IT가 모든 산업 재편의 열쇠인 건 맞지만 근본을 흔들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