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오뉴월 장마

입력 2016-07-05 15:24 수정 2016-07-0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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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뉴월 장마에 돌도 큰다’는 속담이 있다. 오뉴월 장마는 식물을 잘 자라게 해 농사에 도움을 준다는 의미다. 비에 돌이 자란다니!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참으로 멋진 표현이다. 반면 ‘오뉴월 장마에 토담 무너지듯’, ‘오뉴월 장마에 호박꽃 떨어지듯’ 등의 속담은 장마가 우리 삶에 해를 끼치기도 한다는 의미다. 어디 이뿐인가. ‘오뉴월 장마는 개똥장마’라는 말도 있다. 하잘것없지만 퇴비로 쓰이는 개똥처럼 오뉴월 장마는 가뭄에 시달리는 농부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올해도 장마가 어김없이 찾아왔다. 라디오 음악방송에선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으로 시작하는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을 비롯해 럼블피쉬의 ‘비와 당신’,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 등 감성을 자극하는 가사와 가락의 비 노래가 흘러 나온다. 술꾼들은 삼삼오오 모여 추억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일 것이다. 방이나 마루 등에 비가 새 양동이를 받쳐놓은 기억이 있는 중년이라면 기타 소리 같던 그 빗소리를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속담 속 ‘오뉴월’은 음력 5월과 6월로, 여름 한철을 의미한다. 양력으로는 이맘때인 6~7월에 해당한다. 그런데 일이월(1ㆍ2월), 삼사월(3ㆍ4월), 칠팔월(7ㆍ8월) 등과 달리 5·6월은 왜 ‘오육월(혹은 오륙월, 오유월)’이라 하지 않고 ‘오뉴월’이라고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발음하기 쉽기 때문이다. 한자어는 본음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 널리 쓰이는 속음으로도 읽을 수 있다. 발음하기 어려운 소리를 부드럽게 내기 위해서이다. 오육월과 오뉴월 둘 다 읽어 보자. 어느 것이 더 발음하기 쉬운가? 말할 것도 없이 오뉴월이 훨씬 더 읽기 쉽고 듣기에도 편하다.

이처럼 인접해 있는 두 소리를 연이어 발음하기 어려울 경우 어떤 소리를 더하거나 빼 발음하기 쉽고 듣기에도 부드러운 소리로 변화시키는 음운현상을 활음조(滑音調) 또는 유포니(euphony) 현상이라고 한다. ‘십월(10월)’을 발음하기 불편한 받침 ‘ㅂ’을 빼고 시월로, ‘육월(6월)’을 유월로 말하고 쓰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활음조 현상으로 본래 음과 다르게 발음되는 단어는 이외에도 여럿 있다. 구시월(구십월), 초파일(초팔일), 소나무(솔나무), 바느질(바늘질) 등이 대표적이다. 국립국어원은 속음으로 읽히는 것은 그 소리에 따라 적는다고 규정, 우리에게 익은 소리만을 표준어로 삼았다. 따라서 육월, 오륙월, 십월, 구십월·초팔일, 솔나무, 바늘질 등과 같이 쓰는 건 맞춤법에 어긋난다. 반드시 유월, 오뉴월, 시월, 구시월, 초파일, 소나무, 바느질이라고 말하고 써야 한다.

어린 시절, 하늘은 맑은데 비가 내리면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남자 아이들은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라고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이처럼 햇볕이 있는데 잠깐 흩뿌리다 마는 비는 ‘여우비’이다. 홀연히 나타났다가 가뭇없이 사라지는 여우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 이름이 한 편의 서사시 같다. 어디 이뿐인가. 선조들이 비에 붙인 이름은 참으로 다양하며 아름답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한 줄기씩 내리는 소나기는 ‘산돌림’, 굵고 거세게 퍼붓는 비는 ‘작달비’이다. 좍좍 내리다 그쳤지만 계속 비가 올 기색이 있는 ‘웃비’, 땅을 다지는 데 쓰이는 달구처럼 몹시 힘있게 내리 쏟는 ‘달구비’…. 모자라도 걱정, 넘쳐도 걱정인 게 비다. 모쪼록 이번 장마는 농사에 도움이 되는 희우(喜雨)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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