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올림픽이 열린 1988년은 증권업무의 자율화가 본격 실행된 시기다. 정부는 국내 자본시장 전면 개방을 앞두고 1988년 6월 69건의 자본시장 규제를 완화하는 ‘증권업무 자율화 방안’을 내놨다.
당시 가장 주목받은 정책은 위탁 및 인수 수수료 자율화였다.
주식을 사고팔 때 고객이 부담하는 위탁 수수료율은 해당 정책이 발표되기 이전까지 100만원 미만 0.8%, 100만~500만 0.7%, 500만원 이상 0.6%로 고정돼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정이 전면 폐지되면서 투자자들은 수수료를 낮추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기업이 혜택을 보는 자율화 정책도 많았다. 연 11.2%로 고정된 보증사채 금리를 자율화해 기업의 자금 조달 숨통을 트이게 했다. 또 기업공개(IPO) 시 인수금액의 2.9~3.5%의 인수 수수료를 떼던 것 역시 업계의 자율에 맡겼다. 증권사는 경쟁력 확보, 기업은 IPO 비용을 덜 수 있도록 한 정책이었다.
정부는 증권사의 지점 개설 규제도 증권업협회의 자율 규제로 이관했다. 이전에는 증권사가 지점을 내려면 정부에 건별로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1988~1989년을 기점으로 정부는 지점 개설 자율화 방침으로 전환했다. 대신 협회는 지점 개설 기준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정부 정책을 보완했다.
묶여있던 증권사의 이자도 당시에 풀렸다. 고객이 주식을 거래하고자 맡기는 예탁금에 증권사는 연 6%의 이자를 지급해야 했다. 정부는 증권사로의 투자자 자금 유입을 활성화하고자 이자를 고정해놨다.
하지만 고객들이 늘면서 증권사들은 부담을 느꼈고 이에 정부는 증권사 고객예탁금 이자율을 요구불예금(당시 1% 내외)에 연동하도록 했다.
이 같은 정책들에 힘입어 1990년대 초 국내 자본시장 개방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직접투자가 허용된 1992년 이들은 1조5000억원의 주식을 사들였다. 직접투자를 위해 등록한 외국인 수는 1572명이었고 이들이 보유한 상장종목은 624개였다. 특히 외국인들이 저 PER(주가수익비율)주와 같이 저평가된 주식에 집중 투자한 것은 가치 투자의 중요성을 확산시킨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