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3월 10일 안창호(1878.11.9~1938.3.10)

입력 2016-03-1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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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회·흥사단·임시정부…자주독립 향한 한 평생

3월 10일은 독립운동가인 안창호(1878.11.9~1938.3.10)가 영면한 날이다. 자주독립은 국민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그의 민족개조론은 당시 지식인들에게 폭포수 같은 감동을 줬다. 그리고 성실ㆍ사랑ㆍ봉사라는 그의 정신은 지금 지식인들에게도 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는 평안남도 강서에서 출생했다. 어릴 땐 한학을 배웠으나 서당 선배에게서 들은 신식 학문에 감전돼 구세학당에 들어가 그리스도교도가 됐다.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평양에 지부를 설치하기 위한 만민공동회를 연 뒤 약관의 몸으로 청중에게 엄청난 감동을 안겨준 연설을 했다. 1899년엔 고향에 한국 최초로 남녀공학 점진학교를 세웠다. 그는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신학문으로 더욱 무장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고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도 교포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한인공동협회를 만들었다.

그 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귀국해 1907년 항일비밀결사 신민회를 결성했다. 하지만 일본 경찰의 탄압이 이어지자 결국 시베리아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1912년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를 조직해 초대 총회장에 취임했다. ‘105인사건’으로 신민회·청년학우회가 해체되자 1913년 흥사단을 조직했다. 3·1운동 직후엔 중국 상하이(上海)로 가서 임시정부에서 각종 요직을 역임했다. 1921년 임시정부가 내부 분열하자 이를 수습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국무총리 서리에서 물러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흥사단 조직을 강화했다.

1926년 다시 상하이로 가서 흩어진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에 진력했으나 실패했다. 1932년 윤봉길 의거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본국으로 송환됐다. 2년 6개월간 복역한 뒤 가출옥했으나 휴양 중 동우회사건으로 재투옥됐다. 이후 1938년 병으로 보석됐지만, 휴양 중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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