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2월 25일 르누아르(1841.2.25~1919.12.3)- 색채 표현에 능했던 프랑스 인상파 화가

입력 2016-02-25 13:1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프랑스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2.25~1919.12.3)는 색채 표현이 뛰어난 인상파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밝고 화려한 원색의 대비가 두드러지는 표현으로 장미, 어린이, 나부(裸婦)를 즐겨 그렸다.

가난한 양복점집 아들이었던 그는 열세 살 때부터 도자기공장에 들어가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일을 했다. 이곳에서 색채를 익히면서 점심시간이면 루브르미술관에 가 그림을 감상하며 화가가 될 꿈을 키웠다. 4년 후 기계화의 물결에 밀려 실직한 뒤에는 부채 그림이나 점포 장식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1862년 샤를 글레이르의 아틀리에에 들어간 르누아르는 그곳에서 모네, 시슬레 등을 알게 되고 피사로, 세잔과도 사귀어 인상파운동을 지향한 혁신화가들과 어울리게 됐다.

르누아르는 인상파가 발족한 1874년 제1회 전람회에 ‘판자 관람석’을 출품했고 2회, 3회에도 참가했다. 대작 ‘물랭 드 라 갈레트’와 ‘샤토에서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인상파 시대의 대표작이다.

많은 예술인들이 그랬듯 르누아르도 1881년 이탈리아를 여행한 뒤 화풍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라파엘로나 폼페이의 벽화에서 감동을 받고부터 고전주의적 미술에 다시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이다. 그들의 작품에서 배운 것을 인상주의 기법과 융합함으로써 르누아르는 자신만의 작품을 빚어낼 수 있었다. 담백한 색조로 표현한 ‘목욕하는 여인들’ 등이 그런 작품이다.

만년에는 지병인 류머티즘성 관절염 때문에 손가락에 연필을 매고 작품을 제작했다. 마지막 10년간에는 조수와 함께 조각에도 손을 대 ‘모자(母子)’와 같은 작품을 남겼다. 1900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의 세 아들 중 장남 피에르는 배우가 되어 연극 영화에 출연했고, 차남 장은 1946년 ‘남쪽 사람’으로 아카데미상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펜싱 여자 사브르, 사상 첫 단체전 은메달…우크라에 역전패 [파리올림픽]
  • 투자만큼 마케팅 효과도 '톡톡'…'파리올림픽' 특수 누리는 기업은? [이슈크래커]
  • 단독 “셀러도 몰랐던 위성몰”…‘큐익스프레스 상장용’ 부풀리기 꼼수[티메프發 쇼크]
  • 부작용이 신약으로…반전 성공한 치료제는?
  • 아이브, 美 롤라팔루자 신고식 '성공적'…밴드 라이브로 팔색조 무대 완성
  • 엔화 강세에 엔테크족 '반짝 웃음'…추가상승 여부는 '글쎄'
  • “유급 없다”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의대생…수업 출석률 2.7% 불과
  • 기술주 흔들려도…외국인 ‘삼성 러브콜’ 건재
  • 오늘의 상승종목

  • 08.02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85,563,000
    • -1.57%
    • 이더리움
    • 4,102,000
    • -1.94%
    • 비트코인 캐시
    • 510,500
    • -5.46%
    • 리플
    • 783
    • -2.61%
    • 솔라나
    • 202,500
    • -5.73%
    • 에이다
    • 510
    • -1.92%
    • 이오스
    • 713
    • -3.13%
    • 트론
    • 177
    • +1.14%
    • 스텔라루멘
    • 131
    • -3.68%
    • 비트코인에스브이
    • 60,450
    • -3.05%
    • 체인링크
    • 16,530
    • -2.19%
    • 샌드박스
    • 392
    • -3.69%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