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생각] 10월 10일 諺文風月(언문풍월) 한글로 지은 시가를 얕잡아 부른 말

입력 2015-10-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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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1418년 즉위한 세종은 20여 년 연구 끝에 훈민정음을 완성하고 1443년에 공개했다. 조선왕조실록에 “28자로 한자와 우리말을 표기할 수 있으며 간단하지만 전환이 무궁하다”고 기록돼 있다. 어제 소개한 서거정의 글에는 “영릉이 처음으로 언문을 창제하니 신이(神異)한 생각과 밝은 지혜는 그 어느 왕보다 뛰어났다.”[英陵初制諺文 神思睿智 高出百王]고 평가돼 있다.

그러나 “집현전의 여러 유자들이 합사(合辭)로 불가함을 아뢰고 심지어 항소하여 극단적 논쟁을 하는 자까지 있었다.”[集賢諸儒 合辭陳其不可 至有抗䟽極論者] 한글은 그래서 한자를 대체하지는 못한 채 민간의 의사소통 수단 역할을 했다. 특히 ‘암글’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큼 여성들(궁중도 물론)의 문자로 자리 잡았다.

이런 언문으로 한시처럼 글자 수와 운을 맞춰 짓는 시를 언문풍월(諺文風月)이라고 불렀다. ‘육두풍월’이라고도 한다. 언문풍월은 조선 후기에 성행한 판소리 작품을 통해 그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춘향전’ 등의 풍자적 표현에 언문풍월이 다양하게 나온다.

언문풍월의 대가는 역시 김삿갓이다. 그의 작품으로 전하는 ‘사면 기둥 붉었타/ 석양 행객 시장타/ 네 절 인심 고약타’와 같은 게 대표적 사례다. 일종의 희작시(戱作詩)라고 할 만하다. 1900년대에는 언문풍월이 신문 잡지의 문예란을 통해 독자적 시형식으로 부상했다. 내용도 진지해져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계몽운동을 고취하기도 했다. 1906년 2월에 대한매일신보에 연재가 시작된 ‘병문친고 육두풍월’이 대표적인 예다.

일종의 형식실험인 언문풍월은 한시 해체와 언문표현의 다양성을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신문과 잡지의 뒷표지에는 언문풍월 모집 광고가 실리기도 했는데, 1917년에 간행된 ‘언문풍월’은 응모작을 뽑아 편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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