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부호 열전]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돈ㆍ기술보다 사람”… 영혼 있는 기업 ‘안랩의 아버지’

입력 2015-05-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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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대학원 시절 국내 첫 바이러스 백신 ‘V1’ 개발… 의대교수로 재직하며 7년간 연구 ‘V3’ 모델 탄생

“영혼이 있는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만큼 사람과 공공성을 중요시한 기업인이 또 있을까. ‘의사→벤처기업인→교수→정치가’로 이어지는 그의 삶 가운데에는 이 같은 철학이 있었고, ‘안풍(安風)’을 일으키며 18대 선거의 대권주자로까지 변신케 하는 원동력이 됐다.

풍운아 같은 삶과 달리 어린시절엔 특출난 구석이 없었다. 오히려 유달리 왜소하고 내성적이었던 그는 늘 땅만 보고 걷던 소년이었다. 대신 그는 책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6학년께 도서관에 있는 거의 모든 책을 읽었을 정도다. 그 스스로도 자신을 ‘활자중독자’였다고 평가했다.

안 의원의 어린시절 꿈은 과학자였다. 하지만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고교 2학년, 의대 진학을 결심하고 정진했다. 사실 그는 피를 끔찍히도 싫어했다.

그의 꿈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대학원에서 전기생리학을 공부하던 중 우연한 계기로 이뤄진다. 1988년 6월 11일 잡지를 통해 ‘브레인 바이러스’라는 컴퓨터 바이러스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 당시 기계어를 막 배웠던 그는 이후 자신의 컴퓨터 디스켓에서도 이 바이러스를 발견하게 되고 하룻밤을 꼬박 새워 한국 최초의 백신을 개발하게 된다. 현재 컴퓨터를 가진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V3’의 초기 모델 ‘V1’의 탄생이다.

1989년 단국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백신 개발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없었다. 그는 무려 7년 동안 낮에는 의사, 밤에는 백신 개발자로 이중생활을 했고, 1991년 해군 군의관으로 입대하기 전날 밤까지 한국을 강타한 미켈란젤로 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매달렸다. 이날 밤 개발된 V3는 PC통신을 통해 전 국민에게 무료로 배포됐다.

1994년 전역과 함께 그는 미래가 창창한 의사의 삶을 포기하고 개발자의 길로 들어선다. 이듬해 3월 15일 안 의원은 한글과컴퓨터 창업자 이찬진 현 드림위즈 대표의 도움으로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현 안랩)’를 설립하게 된다. 창업 3년 만인 1997년 안철수의 V3 때문에 한국 진출길이 막힌 세계적인 백신 회사 맥아피가 안랩을 1000만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의한다. 하지만 그는 단번에 거절한다. 국내 보안시장은 국내 기업이 지켜야 한다는 소신과 함께, 그를 믿고 함께 고생한 직원들을 하루아침에 다른 기업에 넘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안랩은 설립 초기 수익모델을 만들지 못해 애를 먹었다. 기업 설립 전 7년 동안 V3를 무료로 보급해 온 탓이다. 직원 월급을 주려고 물품대금으로 받아놓은 어음을 은행에 들고 가 할인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러던 1999년 4월 26일 그 유명한 ‘CIH(일명 체르노빌바이러스) 바이러스 대란’이 일어났다. 오전 9시 전국 30만~50만대의 컴퓨터가 일시에 먹통이 됐고 이를 해결해 줄 유일한 사람으로 안철수가 떠올랐다. 그해 안랩은 연매출 첫 100억원을 돌파했고, 2년 뒤인 2001년 코스닥 상장에도 성공한다.

이후 IT 인프라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보안 위협이 증가하면서 기업 사용자층을 중심으로 시장이 빠르게 형성됐고 안랩은 사업을 빠르게 확장해 나간다.

언론에 집중조명되던 안랩의 가장 큰 힘은 기술력보다 경영철학에서 나온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는 ‘영혼이 있는 기업’이라는 건전한 가치관을 조직 구성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명문화하기도 했다. 실제 안랩은 수익 사업뿐만 아니라 디도스 공격 등 국가 재난 수준의 사이버 테러가 일어날 때마다 전 직원이 비상대응 체제에 돌입해 대국민 경고 메시지와 전용 백신을 무료 제공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완수했다.

안랩 창립 10년째인 2005년 3월 안 원장은 “안랩은 영혼이 있는 기업으로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퇴임사를 끝으로 돌연 대표이사직을 사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3년 뒤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한 그는 아내 김미경 교수가 있는 카이스트에 석좌교수로 복귀했다.

안 의원은 정부의 다양한 위원회자문위원을 맡으며 전국 대학에서 강연을 진행, ‘국민 멘토’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특히 재벌을 ‘동물원’에 비유하며 강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그의 행보는 IT 중소기업의 대변인이자, 취업준비생들의 멘토, 그리고 학부모들의 희망이 됐다.

안 의원은 2011년 6월부터 3개월 동안 의사인 박경철씨, 법륜스님이 이끄는 평화재단과 함께 전국 25개 도시를 순회하는 ‘청춘 콘서트’를 진행하며 ‘안철수 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던 8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부결로 사퇴한 뒤 서울시장 출마를 고려하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하며 본격적인 야당 대권주자로 거론된다. 그의 정치 참여 여부가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로 급부상했지만, 그는 뚜렷한 언급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듬해 7월 안 의원은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한 뒤 두 달 동안 전국 각계각층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경청투어’를 거쳐 마침내 18대 대선 출마를 선언, 현재까지도 정치인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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