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서로에 대해 오매불망(寤寐不忘)의 감정을 내비쳐 화제다. 미국, 영국, 일본 등 다른 나라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는 서로 자주 만나는 데 반해 한국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는 속내를 해외 출장길에 동시에 털어놓은 것이다.
최 부총리와 이 총재는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는 동아시아국가연합(ASEAN)+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 참석, 줄곳 함께 일정을 소화했다. 아세안+3 회의 후 기자회견에는 최 부총리가 마이크를 켜는 것을 깜빡 잊고 발언을 하자 이 총재가 재빨리 대신 마이크를 켜주는 등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두 수장은 또 바쿠 시내에 위치한 같은 JW메리어트호텔에 머물렀다.
아쉬움을 먼저 토로한 것은 최 부총리다. 그는 지난 2일(현지시각)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우리나라는 장관과 총재가 만나면 비판을 받는데 이해가 안간다”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매일 만난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도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매주 만나고 영국도 매일은 아니지만 매주 자연스럽게 만난다”고 설명했다.
최 부총리는 “한은 총재와 부총리가 자주 만나 경제 상황을 얘기해야지 안만나는 게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도 다음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 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경유하면서 비행기를 탔더니 아소 일본 재무상하고 구로다 총재가 같은 비행기로 움직였다”며 “우리가 그렇게 했으면 (여론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 총재는 또 “미국 연준 의장과 재무장관은 서로 자주 만난다. 옛날에는 전 연준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이 목요일 오찬인가 조찬을 재무장관이랑 같이 했다고 하더라”라며 최 부총리처럼 다른 나라 상황을 전했다.
서로를 향한 그리운(?) 마음에도 두 수장은 현지에서 따로 시간을 내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모두 “없다”고 답했다.
이는 물가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하는 중앙은행과 경제성장을 중시하는 재무부는 구조적으로 긴장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또 상대적으로 입지가 약한 한은이 과거에 재무부의 압박을 못이기고 종종 자신들의 정책 판단과 다른 결정을 내림에 따라 서민들이 장기간 고물가의 고통을 겪은 사례도 있다. 한은의 중립성 혹 독립성이 중시되는 데에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
시간이 흘러 서로를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최근에 많이 흐려지면서 정부와 중앙은행 간 정책공조가 활발해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과거와 같은 사태를 우려하는 시각은 가시지 않았다.
특히 작년 7월 현 정부 실세라고 여겨지는 최 부총리가 경제정책 수장으로 임명되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 우려가 고조됐다.
여기에 최 부총리의 ‘척하면 척’ 발언이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최 부총리는 작년 9월 호주 케언즈에서 폐막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후 “이 총재에게 통화정책의 긴밀한 협조를 요청했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와인을 먹으면 다 하는 것 아니냐. 금리의 ‘금’자 얘기도 안 했지만 ‘척하면 척’이다”라고 말했다. 이후 최 부총리는 금리인하 압박을 가했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최 부총리와 이 총재는 내심은 그렇지 않더라도 대외적으로 서로가 지나치게 친밀하게 보이는 것을 경계하게 됐다. 이 총재(1970 학번)와 최 부총리(1975 학번)는 연세대 선후배 관계이기도 하다.
같은 해에 나란히 재정과 통화 정책 수장으로 취임한 이 둘은 1년 가까이 견조한 정책공조 행보를 보여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외적으로 공공연하게 “경제를 바라보는 정부와 한은의 시각이 다르지 않다”라며 이심전심(以心傳心) 화법을 구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