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순탄하게 진행된 삼성그룹의 구조 재편이 차질을 빚은 것은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무산이 처음이다. 이 때문에 이번 합병 무산은 열흘 앞으로 다가온 삼성그룹의 사장단 및 임원 인사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게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앞서 지난달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은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 박중흠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을 불러 주가 관리와 실적 개선을 당부했다. 합병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서다. 박대영 사장과 박중흠 사장은 지난 9월부터 투자자들을 상대로 기업 설명회를 열며 합병 이후 시너지 효과에 대해 홍보했지만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주가 관리에도 실패했다.
박대영 사장과 박중흠 사장 모두 구원투수 역할이었던 것도 공통 분모다. 박대영 사장은 2012년 말에 삼성중공업 사장에 올랐으며 박중흠 사장은 지난해 8월 엔지니어링의 사장에 올라 회사의 체질 개선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번 합병 무산은 ‘구원투수가 실점을 해 팀을 패배로 이끈 것’이란 비유가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박대영 사장과 박중흠 사장은 삼성중공업에서 30년 이상 함께 일했다. 이번 합병 실패를 두고 책임을 묻는다면 둘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 실패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영향력 확대에 제동이 걸린 측면도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배 아래 있는 삼성전자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법인의 최대주주(12.5%)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두 회사의 합병이 이 부회장의 지배권 강화를 위한 행보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임원진도 연말 인사를 앞두고 그 어느 계열사보다 긴장하고 있다. 합병 실패란 큰 짐을 진 데다 실적 부진은 발목을 잡고 있다. 현재 삼성중공업의 임원은 120여명, 삼성엔지니어링은 110여명 수준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의 인사 원칙 중 하나가 신상필벌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합병 무산과 실적 부진은 큰 악재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