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형중벌‧신상필벌’論 법가 2대 원칙
한비자, 법치 통해 부국강병 노렸지만
“일률적 법 잣대, 국가통치 능사 아냐”
고대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과거 경험을 중시하는데, 이것은 농본중심사회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공자(孔子)는 주(周) 문왕과 주공에, 묵자(墨子)는 우임금, 맹자(孟子)는 요·순 임금, 도가(道家)들은 복희씨(伏羲氏)와 신농씨(神農氏)를 논거로 제시해 각자의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이들 대부분은 모두 복고적(復古的)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법가는 시대 변천에 따른 사회적 요구를 파악하고, 그 요구에 따라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새로운 대응 방식을 모색하고자 노력한 학파에 해당한다. 세상이 변화하면 도를 행하는 방법도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는 법가사상은 변화를 인정하고 그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현실주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상앙(商鞅)의 법치(法治), 신불해(申不害)의 술치(術治), 신도(愼到)의 세치(勢治)를 통합한 한비자는 발전적 변화사관을 근거로 그의 법사상을 전개한다.
각각의 시대는 시대적 상황뿐만 아니라 시대적 환경과 시대적 요청 또한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고, 상고(上古)시대에는 사람이 적고 재화는 많아서 사람 사이에 다툼이 적었으나 오늘날에는 사람은 많고 재화는 적어 다툼이 많아지게 되었음을 한비자는 받아들인다. 한비자는 유가나 묵가 등이 말하는 고대의 성왕들은 단지 각각의 시대의 필요성에 따라 훌륭하게 통치한 인물들로 평가하지만, 한비자의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인물들이 필요하다고 한다.
법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어야 하고, 정치란 현재의 긴박한 사정에 부합해야 한다고 한비자는 주장한다. 이는 단순히 실용성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인간이 추구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한비자를 이해함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악(惡)하다고 본다. 인간은 본성이 악해서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본 것이다. 악한 인간 본성 때문에 인간을 그대로 두면 서로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 상태가 되고, 그러다 보면 국가는 없어지게 될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백성이 법(法)을 지키면 상을 주고 어기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력한 법 시행만이 악한 인간의 본성을 다스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한비자의 엄형중벌론(嚴刑重罰論)은 인간의 본성을 악한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이를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 도출된 처방이라 하겠다. 한비자는 법을 시행함에 있어, 엄형중벌(嚴刑重罰) 외에도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강조했다. 이는 법을 시행하는 양대 원칙으로 볼 수 있다.
원래부터 악한 본성을 가진 인간을 잘 다스려 상생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서는 법치밖에 없다고 한비자는 본 것이다. 강력한 법 시행만이 다섯 가지 좀벌레인 오두(五蠹)의 횡포에서 국가를 구할 수 있고, 악한 인간의 본성을 억누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한비자가 법치(法治)를 통해 이루려고 했던 것은 부국강병(富國强兵)이다. 당시 어지러운 시대 상황에서 각국은 부국강병을 추구했다. 그 상황에서 나라를 안정되게 하고 통치하는 데 가장 쓸모 있다고 판단된 것이 강력한 법을 통한 군주의 통치로 본 것이다. 전쟁이 계속되고 힘없는 국가는 망하는 위기 속에서, 한비자는 절대 군주의 통치를 통한 강력한 법 시행만이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고 봤다.
인간 본성을 성악설(性惡說)로 보고 법치를 통해 부국강병을 경주했던 법가사상은 현재 중국(China)의 토대가 된 진(秦)나라를 세우고 유지함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 진나라가 법가사상을 통해 중국 고대의 혼란 시기인 춘추(春秋)시대를 지나 전국(戰國)시대를 종식시킨 점은 높게 평가할 수 있으나, 백성에 대한 엄형중벌과 법치만을 강요했던 통치체제는 그리 오랜 영광을 누리지 못한 불명예를 낳았다. 이처럼 진나라의 15년이라는 극히 짧은 집권은 일률적인 법의 잣대만이 국가통치의 능사가 아님을 현대인들에게 깨우쳐 주고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