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통일의 기초가 됐으나 패망의 원인이 된 ‘법가사상’을 최근 정치권에서 보는 것 같다. 한비자는 “군주가 하고자 하는 일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속뜻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제위에 없는 듯, 고요하게 백성들이 그가 있음을 모르는 듯이 텅 비어 소재를 파악할 수 없도록 지낸다”고 설명했다. 시황제는 한비자의 말대로 행동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의 처신도 비슷해 보였다.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주자인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의 사례에서 박 전 위원장이 한비자처럼 행동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국회 정론관 내에는 기자회견을 위한 단상이 놓여 있다. 이곳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국회의원’이어야만 한다. 국회의원이 아니면 마이크를 켜주지 않는다.
임 후보는 국회의원 신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마이크 없이 기자회견을 하곤 했다. 나름 대선후보인데도 예우가 없었다. 기자들이 국회의원 1명이라도 대동하고 정론관에 오라고 훈수를 뒀다. 보다 못해 새누리당 대변인실에 의원 1명을 붙여주라고 조언까지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에선 거의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임 후보는 당사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임 후보측은 “그는 평소에 지역을 강조하지도 않고 사조직을 만들지도 않는 스타일”이라며 “시대정신의 변화에 부합하는 후보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후보가 당에 다른 후보를 포용하면서 함께 가자고 얘기했다면 의원들이 협조했을 것”이라며 “그런 말이 없기 때문에 과도하게 충성(?)경쟁을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판단에 조금 아쉽다”고 귀띔했다.
이런 현상은 더욱이 민주통합당 김두관 대선 예비후보와 대비된다. 김두관 후보가 대선 출마 선언 후 지난 12일 국회 정론관에 처음 등장했을 때 옆에는 문병호 의원이 함께 했다.
정론관에서 마이크를 사용토록 하기 위해서 였다. 김 후보는 이날 전현희 전 의원을 캠프 대변인으로 선임하고 일일 브리핑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당 대변인실에서도 적극 지원했다. 박용진 대변인이 발 벗고 나서서 전현희 대변인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새누리당은 대선 후보도 지원하지 않는 반면, 민주당은 후보 대변인까지 지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속뜻을 드러내지 말라’는 한비자의 말이 떠오른다. 새누리당은 강력한 법가사상을 채택한 진나라가 2대도 가지 못했다는 점을 되새겨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