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저해지 논란에 생긴 '원칙'…IFRS17 뒤흔드나 [새 회계 증후군下]

입력 2024-11-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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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4-11-20 17:32)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면 잔기침이 나듯, IFRS17 도입 후 보험업계는 ‘새 회계 증후군’을 앓고 있다. 연착륙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이어지자 소비자와 시장의 반응도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보험 회계의 방향을 조명하고자 한다.

당국 제시한 원칙 모형 사실상 강요
무·저해지 판매 비중 높아 영향 클 듯
사후 검사 아닌 선제적 기준 설정은
자율성 핵심인 IFRS17 본질 퇴색할 수도

무·저해지 보험을 둘러싼 ‘고무줄 회계’ 비판에 대응해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지만, 오히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의 핵심 원칙을 무시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자율성이 핵심인 IFRS17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실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해지율 가정에 대해 금융당국이 추정한 모형을 사실상 강제한 탓이다.

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무·저해지 상품의 해지율을 두고 관련 경험통계가 부족해 보험사가 각기 다른 가정을 적용하면서 미래 예상 수익인 보험계약마진(CSM)에 큰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이에 회계 비교 가능성 저하와 낙관적인 가정이 불러일으키는 ‘실적 뻥튀기’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이달 7일 금융당국은 원칙 모형이라는 이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완납 시점 해지율이 0%에 수렴하는 모형 중 로그-선형모형(실무상 수렴점 0.1%)이다.

만약 각 사의 경험통계 등 특수성으로 인해 다른 모형을 적용할 경우 일부 경우에 한 해 예외를 두기로 했다. 그러나 한정된 모형 내에서, 감사보고서·경영공시에 타 모형 선정의 특별한 근거와 원칙모형과의 차이를 상세히 공시해야 하는 엄격한 요건이 있었다. 또 향후 예외모형을 선택한 모든 회사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현장점검을 하고, 계리법인에 대해서도 감리근거 신설해 외부검증의 적정성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금감원은 문제 해결을 위해 ‘원칙 모형’ 도입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보험사들이 올해 무·저해지 상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한 만큼, 원칙 모형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3대 생명보험사(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의 무·저해지 환급형 판매 초회보험료는 2514억 원으로, 전체의 80.0%였다. 5대 손해보험사(삼성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KB손해보험·메리츠화재)는 1608억 원어치를 판매했다. 이는 39.9%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선을 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보험사가 자율 계리 가정을 악용해 손익을 과도하게 조작할 가능성도 있지만, 사후 검사 강화가 아니라 선제적으로 기준을 세워버리는 것은 IFRS17의 본질을 퇴색시킨다는 것이다. IFRS17에서는 자율성이 핵심 요소로, 보험사별로 상품 구성과 특성이 다른점을 인정해 각 보험사가 자율적으로 계리 가정을 수립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모형도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도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혼란이 국내 보험업계의 경험 통계 부족에서 비롯된 문제인데, 금융당국이 ‘상식적인 추론’을 기반으로 만든 기준이 시간이 지나 통계가 축적됐을 때에도 타당한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마다 보유계약 포트폴리오가 다 다른데 모두가 같은 가정을 쓰는 건 무리가 있을 수 있다”면서 “무·저해지로 통칭하지만, 이는 종형일 뿐 △종합보험 △암보험 △어린이보험 △간병보험 등으로 나뉘는 걸 일관적인 모형으로 하라고 하는 건 부합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해지율 가정에 대해 가이드를 하는 건 당국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강요하거나 압박하는 건 과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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