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채권시장에 따르면 7일 기준 개인과 외국인이 보유한 원화채권 잔고는 각각 54조1871억 원, 263조4196억 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채권 투자 주체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대치다.
외국인 원화채 보유액은 작년 초 221조9770억 원과 비교하면 10% 넘게 증가했다. 월별 기준 올해 3월에만 전월 대비 4조 원가량 줄어들었던 걸 제외하면 올 들어 꾸준히 증가세다. 지난 8월에는 한 달 만에 7조3000억 원이 불어나기도 했다.
외국인들의 채권 투자는 주로 국채에 몰려있다. 국채와 통안채를 제외한 특수채, 회사채 등은 모두 연초 대비 보유액이 감소했다. 8월 말 기준 외국인의 총 채권 보유액 259조 원 중 국채에 투자된 자금은 238조 원으로 약 92%를 차지했다. 2년 전 81%, 1년 전 89%였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국채 투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배경에는 정책적인 뒷받침이 있었다. 지난해 초 정부는 법인세법과 소득세법을 개정해 외국인 국채·통안채 투자에 대한 이자소득과 양도소득 비과세를 시행했다. 같은 해 말에는 30년간 유지됐던 외국인투자자 등록제(IRC)를 폐지했다.
외국인투자자들이 기존에 국내 채권을 투자할 때는 별도의 금융감독원 사전등록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이를 법인식별기호(LEI·Legal Entity Identifier) 또는 여권번호를 통해 간소화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IRC 폐지 이후 상반기 외국인투자자가 신규 계설한 계좌는 1년 전보다 약 3배 늘어난 1432개로 집계됐다.
지난 6월에는 국제예탁결제기구(ICSD)인 유로클리어·클리어스트림의 국채통합계좌(Omnibus Account)를 개통해 개별 계좌를 개설해야 하는 절차도 없앴다. 또 역외에서 외국인 간 담보거래도 허용하면서 외국인투자자들의 한국 자본시장 접근성을 한층 더 높였다.
외환거래 편의성도 개선했다. 올해 1월 외국 금융기관(RFI)이 국내 외환시장에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했고, 7월부터 외환시장 거래 마감 시간을 오후 3시 30분에서 다음 날 새벽 2시로 대폭 연장했다.
개인투자자의 채권 투자 강도가 거세진 점도 시장에서 주목하는 부분이다. 개미들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금리 인하 기대감에 따라 국채를 꾸준히 사들였다. 작년 한 해 동안 개인들은 약 22조 원에 달하는 원화채를 사들였다. 채권 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금리 인하가 시작되면 채권가격이 상승한다.
20년 넘게 채권운용을 맡아온 한 대형증권사 채권부문장은 “개인들이 채권을 대규모로 투자하면서 ‘채권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인다’는 메커니즘이 널리 인식된 것도 격세지감으 느껴진다”며 “과거 개인들의 채권 투자 방식은 증권사에서 일방적으로 구해다주는 식이었다면, 요즘에는 투자자 쪽에서 먼저 고금리를 주는 우량 회사채나 공사채를 먼저 알아와 역으로 구해다 달라고 요청하는 점도 과거와는 크게 다른 변화”라고 말했다.
정부는 개인들의 채권 열기도 놓치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고금리를 주는 대신 투기등급에 투자하는 하이일드 펀드의 이자·배당소득에 대해 분리과세 혜택을 적용하고, 공모주 우선배정 적용도 내년 말까지 연장했다. 지난 6월에는 개인투자용 국채를 내놓기도 했다. 최소 10만 원부터 소액으로도 국채 투자가 가능해지면서 기관투자가 위주의 국채 수요를 다변화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안착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개인투자용 국채는 청약 결과 10년물 위주로 소화되며, 20년물은 미달이 반복되고 있다. 만기까지 보유해야만 혜택이 크다는 점을 보완할 추가 세제혜택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개인의 안정적 자산형성을 목적으로 도입된 개인투자용 국채는 금리 인하로 채권 값이 오르더라도 매도를 통한 차익실현 불가능하다.
시장에서는 만기가 짧아지는 만큼 투자자 입장에서는 만기 보유에 따른 혜택을 한층 빠르게 볼 수 있는 5년물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기재부는 노후 자산 형성 지원이라는 정책 취지에 부합하지 않다고 보고 현재로써는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