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北 도발, ‘공포의 균형’ 논의 부채질할 것

입력 2024-05-3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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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에 전술핵무기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상원 군사위원회 공화당 간사인 로저 위커 의원은 29일(현지시간) 미 국방 예산 550억 달러(약 75조 원) 증액 계획을 공개하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처럼 한국과 핵무기를 공유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2025 회계연도(2024년 10월~2025년 9월) 국방수권법안에 이런 내용을 반영하겠다고 했다.

앞서 상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인 짐 리시 의원도 ‘군비 통제와 억제력의 미래’ 청문회에서 “아시아에서 확장억제가 특히 약하다”며 유사한 주장을 펼쳤다. “동맹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핵무기를 재배치하기 위한 옵션들을 모색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들의 발언 무게는 가볍지 않다. 위커와 리시는 공화당 최고위급 인사들이다. 군사위와 외교위는 각각 국방부, 국무부의 정책을 감독하고 예산권도 쥐고 있다. 11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하고 공화당이 연방 상·하원을 차지할 경우 전술핵 재배치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 트럼프 2기 체제의 유력한 국방부 장관 후보인 크리스토퍼 밀러 전 국방장관 대행도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상황이 악화하면 (전술핵무기 재배치는) 분명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이다. 단거리(SRBM)·준중거리(MRBM)·중거리(IRBM)는 물론 장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도 이미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사시 미 본토 타격 가능성으로 행정부와 연방의회를 협박하면서 한반도 정세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악몽의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다. 핵무기의 ‘상호확증파괴’ 전략 개념을 빼놓고는 위기 지수를 낮출 묘약을 찾기 어렵다. 핵에는 핵으로 응징하는 ‘공포의 균형’ 논의가 불가피하다.

한미 간에 이런 논의가 불붙을까 걱정해야 할 북 권력층은 외려 무모하고 몰상식한 도발 시리즈로 논의를 부채질하고 있다. 기가 찰 노릇이다. 북은 어제 SRBM 10여 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올해 들어서만 7번째 탄도미사일 도발이다. 앞서 28일엔 260개 넘는 ‘오물 풍선’을 날려 서울과 경기·충청은 물론 호·영남 지역까지 보냈다. 가축 분뇨, 담배 꽁초, 종이 쓰레기 등을 매단 풍선들이었다. 일견 황당한 심리전이고 촌극이지만 생화학전 예행연습이 아니라고 장담할 길도 없다. 특히 군 당국은 유의해야 한다. 북은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 공격으로 인천 해상을 오가는 여객선과 어선에 피해를 주기도 했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핵우산’ 처방을 강화했다. 그러나 유력 싱크탱크인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의) 저위력 핵무기 등을 한국에 재배치할 가능성에 대비한 훈련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역시 전술핵을 통한 균형의 강화 필요성을 말한 것이다. 최근 북 행태로 미루어 핵전력을 넘어 생화학, 전파 공격 등에 대응할 다각도 균형이 더해져야 할지도 모른다. 고대 함무라비 법전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다. 어찌해야 북의 미숙한 권력자들도 ‘공포의 균형’을 체득할지 거듭 성찰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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