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상업의 핵융합”…‘미스 아메리카나’ 테일러 스위프트가 만든 파동 [오코노미]

입력 2023-12-1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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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 예고 )
▲(출처=‘테일러 스위프트 디 에라스 투어’ 예고 )
한 팝스타의 인기가 규모 2.3의 지진을 만들어 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7월 28일, 테일러스위프트의 ‘디 에라스 투어’ 공연이 열리는 시애틀 공연장에서는 팬들의 열성적인 응원으로 인해 규모 2.3 지진에 버금가는 진동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날의 진동은 스위프트가 만들어 낼 파동의 일부에 불과하다. 스위프트는 지난 8개월 동안 이어진 60회의 공연으로 ‘10억 4000만 달러(1조 4000억 원)’라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벌어들였다. 이는 역대 최다 매출을 기록한 팝스타 엘튼 존을 뛰어넘는 수치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지는 “스위프트의 인기는 10년 이상 상승해왔지만, 올해의 경우 예술과 상업적 측면에서 핵융합과 같은 에너지를 분출했다”며 스위프트를 ‘2023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정상에 오른 뒤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스위프트는 대중에게 가수 그 이상의 존재로 통한다. 타임지 역시 스위프트를 ‘이야기의 설계자이자 영웅, 주인공이자 내래이터’라고 칭하며 “올해 테일러 스위프트는 음악뿐 아니라 ‘현대의 거장’으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예술을 완성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이제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장이 된 스위프트에게도 위기의 순간은 있었다. 스위프트는 가수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오해와 조롱, 멸시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깨부수는 과정에서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스위프트의 직업윤리가 ‘옳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인간적 의지에 압도돼 버린다. 그 과정을 담아낸 것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다.

▲타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팝스타 스위프트 (AFP/연합뉴스)
▲타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팝스타 스위프트 (AFP/연합뉴스)
‘미스 아메리카나’에는 스위프트의 인생을 뒤바꾼 사건과 생각들이 등장한다. 먼저, 칸예 웨스트와의 충돌이다. 컨트리 음악에 몰두하며 직접 작곡, 작사한 곡으로 음악적 경력을 쌓아가던 스위프트는 2009년 MTV 비디오 음악 상에서 ‘올해의 여성 비디오 부문’을 수상한다. 수상 소감을 전하기 위해 스위프트가 무대에 오르자 일면식도 없던 칸예 웨스트는 함께 무대에 올라 “당신보다 비욘세가 더 뛰어나다”라고 말한다.

칸예의 무례한 행동에 관객은 즉시 야유를 보냈지만, 스위프트는 당시 경황이 없어 야유가 자신을 향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뻐해야 할 순간에 잊지 못할 상처를 받은 스위프트는 이때 고작 17살이었다. 두 사람의 악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칸예는 2016년 자신의 앨범 수록곡에 스위프트를 성적으로 조롱하는 가사의 곡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수많은 관객 앞에서 부른다. 스위프트가 항의하니 조작된 통화 녹음 파일을 공개해 스위프트를 ‘희생자 위치에 서고자 하는 사기꾼’으로 만들어버린다. 전 세계인의 손가락질을 받게 된 스위프트는 1년 동안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고 잠적해버린다.

▲(출처=넷플릭스 ‘미스 아메리카나’)
▲(출처=넷플릭스 ‘미스 아메리카나’)
스위프트는 잠적 당시를 떠올리며 이때의 자신은 마치 ‘피 흘리는 짐승’ 같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시기는 스위프트의 인생에 커다란 의미를 남긴다. 음악 작업에 몰두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대중에게 관심받고 인정받는 것 외의 행복을 발견한 것이다. ‘아티스트’가 아닌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 스위프트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하며 더 단단해진 태도로 자신의 직업에 임한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앨범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신을 제대로 증명해 보인다.

▲(출처= 넷플릭스 ‘미스  아메리카나’)
▲(출처= 넷플릭스 ‘미스 아메리카나’)
동시에 점차 ‘아티스트’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자신을 성추행한 라디오 진행자와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느낀 고립감과 수치심을 공유하며 약자들의 편에 서겠다는 의지를 굳히고, 여성폭력방지법의 재승인을 반대하는 여성 의원의 당선을 막기 위해 데뷔 이후 숨겨오던 정치적 성향을 드러냈다. 비정상적인 미적 기준에 대한 외모 강박을 내려놓거나 소수자를 위한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현실로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언제나 ‘좋은 음악’에 대한 노력과 탐색을 멈추지 않는다.

▲(출처=넷플릭스 ‘미스 아메리카나’)
▲(출처=넷플릭스 ‘미스 아메리카나’)
스위프트가 걸어온 모든 길이 지금의 ‘테일러 스위프트’를 만들었다. 스위프트는 17년째 정상을 유지하며 문화예술 분야는 물론 정치, 사회, 경제 분야까지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스위프트의 SNS 게시글에 투표인 등록자 수가 증가하고, 스위프트가 공연한 지역은 경제가 부활한다는 ‘스위프트노믹스’ 현상이 발생한다.

실제 스위프트 공연이 주로 열렸던 공연장 일대 호텔은 2억 달러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식으로 그의 공연은 올해 미국 국내총생산(GDP)을 43억~57억 달러(약 5조6000억~7조4000억 원)가량 늘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스위프트가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스위프트의 음악은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스위프트의 음악과 세계를 다루는 강의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개설되고 있다.

“음악은 예술이다. 예술은 중요하고 희소하다. 중요하고 희소한 건 가치가 크다. 가치가 있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엘런 크루거 프리스턴대 교수가 남긴 말이다. 스위프트가 올해 벌어들인 ‘10억4000만 달러(1조 4000억 원)’라는 천문학적인 수익은 아직도 그녀가 얼마나 희소한 아티스트인지를 보여준다. 그녀를 대체할 수 있는 ‘음악 산업 그 자체인 아티스트’가 등장하지 않는 한 이미 정상에 오른 스위프트의 독주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티스트가 등장하더라도 대중은 음악을 넘어 삶의 다양한 부분에 파고든 스위프트를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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