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사법 공백 사태, 방기해선 안돼

입력 2023-10-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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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사회경제부장
▲김동선 사회경제부장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우려했던 사법부 수장 공백 사태가 현실화했다. 대법원장 후보자가 낙마한 것은 노태우 정부 때인 1988년(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이후 35년 만이다.

전임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달 24일 퇴임하면서 대법원은 이미 권한대행 체제에 들어갔지만, 수장 공백 상황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대통령실이 후임 대법원장 인선 작업에 즉각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후보자 물색 과정과 국정감사 일정 등을 감안하면 상당 기간 공백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당장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는 전원합의체 재판이 불가능해졌다. 하급심의 판례를 검토하고 이를 뒤집기도 하는 대법원 전합은 주로 사회적 논란이 큰 현안을 다루는 만큼 우리의 일상생활에 준거 기준을 제시하는데 사실상 이 기능이 마비된 것이다.

또 대법원장 권한대행 체제가 길어지면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안철상·민유숙 대법관 후임도 문제가 된다. 대법관 제청권은 헌법상 대법원장의 권한으로 권한대행이 대법관 후보자를 제청한 선례가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장 부재가 연쇄적으로 대법관 부재로 이어질 공산이 커진 것이다. 이럴 경우 소부 재판도 차질이 우려되고 연쇄적으로 파기환송심 등 하급심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대법원장 공백에 따른 사법부 기능 마비 사태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헌법재판소로도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유남석 헌재소장은 다음달 10일 임기가 끝난다. 대통령이 헌법재판관 중 한 명을 후보자로 지명해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여야 대립 상황이 계속된다면 국회 문턱 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대법원과 헌재 두 양대 사법기관 수장이 모두 공석이 되는 초유의 상황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극단으로 치닫는 정쟁 때문이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 인사’라고 벼르면서 부결을 당론을 채택했다. 이 후보자의 재산신고 누락 등 여러 의혹이 부적격이라는 게 표면적 반대 이유지만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단일대오’를 구축한 측면도 없지 않다. 여당은 “민주당의 조직적 사법 방해”, “의회 테러 수준의 폭거”라고 비난만 할 뿐 전략적 대화나 타협은 외면했다. 대통령실은 이 후보자 인선 과정에서 재산 늑장 신고, 편법 증여, 자녀의 로펌 인턴 논란 등 여러 의혹을 걸러내지 못해 논란을 자초했다.

청문회 과정에서 당사자인 이균용 후보자의 태도도 마뜩잖은 건 마찬가지였다. 이 후보자는 자신에게 쏟아진 의혹에 대해 “몰랐다” “송구하다” “인지하지 못했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모름지기 자신의 주변을 살피고 누구보다 적법성 여부를 따져야 할 법관이 할 얘기는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판사가 법을 몰랐다는 말을 왜 그렇게 자주 하느냐’는 질타가 나오겠는가.

재판 지연 등 사법 기능의 마비는 국민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금도 한번 송사에 휘말리면 재판이 끝날 때까지 긴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2023 사법연감’에 따르면 법관 1인당 사건 처리건수는 지방법원 503건, 고등법원 95건, 대법원 4038건에 달한다. 법관 업무량이 이렇다 보니 상고심 확정 판결까지 평균 처리기간은 민사합의와 단독이 각각 1095일, 970일이 걸리고 형사사건도 합의 586일, 단독 550일이 소요된다. 사법부의 혼란은 이 같은 재판 처리시간을 더욱 지체하게 할 공산이 있다.

이번 일은 입법·사법·행정으로 나뉘는 ‘삼권분립’의 한 축을 흔드는 중대한 사안이다. 사법 기능의 마비를 방기하는 것은 정치권의 직무 유기나 다름없다. 대통령실은 서둘러 도덕성과 전문성을 갖춘 적임자를 인선하고 여야는 냉소와 비난을 거두고 사법 기능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

김동선 사회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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