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깨진 반도체의 법칙

입력 2023-07-05 06:00 수정 2023-07-0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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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업계에서 언급되는 대표적인 두 가지 기술 법칙이 있다. 인텔 공동 설립자 고든 무어가 1965년 제안한 ‘무어의 법칙’과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2002년 제시한 ‘황의 법칙’이다.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 칩에 집적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의 숫자가 2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반도체 내에 전류 흐름을 제어하는 트랜지스터는 심장과 같다. 초미세화 공정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반도체 소자가 작아질수록 트랜지스터의 크기도 줄어든다.

트랜지스터는 전류가 흐르는 '채널'과 채널을 제어하는 '게이트'로 구분된다. 삼성전자, TSMC(대만) 등 글로벌 기업들이 현재 쓰는 ‘핀펫(fin-fet)' 기술은 트랜지스터에서 채널과 게이트가 닿는 면적이 우ㆍ상ㆍ좌로 3곳이다.

삼성전자는 트랜지스터 성능을 더 높이기 위해 3나노(㎚ㆍ1나노=10억분의 1m) 공정부터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기술을 적용했다. GAA 방식은 트랜지스터의 채널 아랫면까지 게이트로 감싸 모든 면에서 전류가 흐르는 구조다. 채널이 게이트에 닿는 면적을 늘려 충분한 양의 전력이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무어의 법칙은 이렇게 작아진 트랜지스터의 성능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기술이 2년 주기로 눈에 띄게 성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반도체 공정의 첨단화 속도가 빨라져 근래에는 무어의 법칙을 얘기하는 경우가 드물다.

황의 법칙은 메모리 반도체의 용량이 1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황의 법칙이 나온 이후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용량이 매년 증가하기도 했다.

다만 무어의 법칙과 황의 법칙은 어떤 과학적 근거에 의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기술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예측하고 미리 상상해 만든 경험적 이론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

기술 발전 주기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진 지도 오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마이크론(미국)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반도체 성능과 함께 주목하는 것이 바로 속도다. 좋은 제품을 얼마나 빠르게 내놓을 수 있는 지가 경쟁력이 됐다.

삼성전자와 TSMC가 맞붙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이 좋은 예다. 이 두 회사는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와 텍사스 테일러에 각각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전체적인 타임라인은 TSMC가 1년 정도 앞서 있다.

TSMC는 지난해 12월 바이든 대통령, 팀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 엔디비아 창업자 겸 CEO 등 미국 정·재계 인사를 대거 초청해 1공장 장비 반입식을 가졌다.

삼성전자는 악천후가 아니면 테일러 공장 건설 공사를 쉬지 않고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말 클린룸이 완공되면 반도체 장비 반입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반도체 기술 진화는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최첨단 기술을 주도하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이 지난달 열린 '용인 첨단 시스템반도체 국가산단 성공을 위한 제3차 범정부 추진위원단 회의'에서 “조기 착공이 절실하다”고 한 것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미중 패권 다툼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법칙을 넘어 차세대 반도체, 최선단 공정의 기술 리더십을 보여준 우리 기업들이 제대로 활약할 수 있도록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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