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극단은 언제나 위험하다

입력 2023-06-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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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단체에 가서 면암 최익현에 대해서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역사학자가 아니지만 이분에 대한 평전을 쓴 덕분에 특강을 요청받았던 것이다. 한 시간 남짓 최익현의 공과 과를 논했다. 서구 열강의 침탈을 거부하며 자강의 길을 걸어갔던 위정척사파의 한계와 장점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들에 맞섰던 개화파의 한계와 장점을 설명했다.

위인전기를 보면 대부분 그 인물의 공만 기술한다. 약점이나 실수가 분명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일부러 뺀다. 사람마다 장점과 단점이 있다. 오류나 실수를 반성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위인이 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를 초청해준 단체의 회원들과 회식을 하고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단체가 이승만 숭배자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전혀 몰랐기에 나의 놀라움은 컸다. 그들의 말 중에 나온 ‘건국의 아버지’는 맞는 평가였고 ‘구국의 영웅’ ‘민족의 횃불’ ‘민주주의의 시작’도 어떤 관점에서는 일리 있는 평가였다. 그런데 이승만에 대한 칭송이 마무리된 시점에서 시작된 김구에 대한 비판은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가혹했다. 테러리스트였고 북한의 회유에 동조했고 민족의 분열을 가져왔고….

나는 무척 혼란스러운 심정으로 그분들과 작별하고 귀가하면서 ‘이승만=정의, 김구=불의’라는 평가를 맹신하는 그들에게 공포감을 느꼈고, 이런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도 공과 과가 있었고 김대중·김영삼·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실수도 했고 실언도 했고 오판도 했고 과오도 저질렀다. 신이 아니고 인간이기에 완벽할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정치가나 정치적 사안에 대해 평가할 때 흑백논리나 극단론으로 치닫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승만과 김구가 다 신탁통치를 반대했다. 하지만 이승만의 반민특위 해체와 남북협상에 임했던 김구의 민족애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어쨌든 남쪽은 미군정을 실시했고 북쪽은 소련의 군사고문단이 들어와 군사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전쟁 전에도 제주도 4·3사건, 여수순천 10·19사건, 대구 10·1폭동사건을 겪으면서 수많은 양민이 죽었고 전쟁이 일어나자 좌와 우로 나뉘어 싸우면서 수십만 명이 죽었다. 사상이 확실하여 전장에 나간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반공이 국시 비슷한 것이 된 분단 이후, 우리에게는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극단론이 습관이 되고 체질화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제3자의 입장에 서면 오히려 욕을 더 먹었다. 즉, 회색인이라거나 박쥐 같은 놈이라고 욕을 더 많이 먹었다. 민주시민이라면 어느 한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는 감각을 갖춘 이여야 하지 않을까.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알아야 하지만 내가 정의의 사도이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악의 축은 아니다.

우리는 지난날, 편 가르기에 너무 골몰하지 않았나 반성해 보아야 한다. 우와 좌, 영남과 호남, 강남과 강북, 여당과 야당, 태극기부대와 촛불부대…. 화합이나 양보, 조정이나 배려의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으르렁대며 살아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타인에 대한 비판과 자신에 대한 반성이 동시에 이뤄지면 안 되는 것일까?

노사분규도 그렇다. 협상테이블 앞에 ‘노’와 ‘사’가 섰을 때, 평행선을 가면 양측 다 상처만 받을 뿐이다. 각자 한 걸음씩 양보하면 화합하여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 상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극단은 언제나 위험한 법이다. 물론 대립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진영에 섰을 때, 우리는 정의이고 상대방은 불의라는 극단론이나 양비론은 우리 사회의 암세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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