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모방 시대의 본질

입력 2023-03-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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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수 브라운백 대표

  한 편의점 브랜드에서 ‘한국인의 취향에 맞는 매운 라면’을 새롭게 출시하고 주목을 받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수주일 후에 다른 브랜드의 편의점에서도 ‘더 매운 라면’, ‘새롭게 매운 라면’ 등이 출시될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유통 사업에서 이렇게 타사의 신제품을 모방해서 새 제품을 출시하는 것은 이미 익숙한 일이다. 2014년 8월 허니버터칩이 출시되었을 때 도산 위기의 해태제과를 살릴 정도로 국민적인 히트를 얻게 되자, 과자업계는 물론 허니버터 건어물, 군만두, 김자반까지 나올 정도로 유사품이 범람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콘텐츠 업계에까지 이런 위기가 온 것 같다. 피카소는 과거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챗GPT 등의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콘텐츠, 타인의 콘텐츠를 표절하는 크롤링 소프트웨어 등 복제하기 쉬운 디지털의 특성을 기반으로 엄청난 양의 콘텐츠가 진위를 알 수 없게 제작되어 유포되고, 원 창작자의 가치가 흐려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까지 돌고 있다.

 이런 문제는 근원적으로 제조와 유통의 업의 본질 차이에 기반한다고 본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제조는 그 과정에서 부가가치가 자연스럽게 생성되고 오리지낼러티가 분명해진다. 그러나 유통은 그 업의 본질이 연결에 있다. 특정한 니즈를 가진 소비자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제품 또는 서비스를 연결하는 것, 다시 말해 편리함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과거 보부상이 제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하며 보따리장수가 개성상인도 될 수 있었던 것, 대항해시대에 향료 등이 먼 거리를 극복해서 전달되며 유럽 귀족에게 엄청난 가격에 판매되었던 것, 백화점 등에서 여러 제품을 엄선해 모아놓고 한자리에서 고객이 구매할 수 있게 한 것,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방문도 없이 제품을 터치 몇 번으로 사게 한 것 등은 모두 유통의 가치를 보여준다.

 이런 유통에서 경쟁이 심화되면 여지없이 모방의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유통업체는 고객이 선망하는 럭셔리 브랜드와 독점권을 협상하기도 하고,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서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만들기도 한다. 그것은 백화점도, 쿠팡도, 아마존도 벗어나지 못하는 업의 속성이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나 콘텐츠 등의 디지털화된 재화는 유통단계가 매우 짧고 복제가 쉬워서 새로운 유통의 경계에 서 있다. 스티브 잡스조차도 제록스연구소에서 그래픽으로 구현되는 유저 인터페이스를 보고 모방해서 매킨토시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만들었고, 빌 게이츠는 그것을 보고 다시 윈도즈를 만들었다.

 무형의 재화는 특히 출처와 고의성도 입증이 어렵다. 세계적인 팝스타인 샘 스미스는 ‘Stay With Me’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든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었음을 인정하고 원작자와 로열티 계약을 체결했다. 챗GPT 출시 이후 영어권 교육계는 학생들의 부정행위를 알 수가 없어 숙제를 교내시험으로 전부 대체하기도 하고, 챗GPT 사용 여부를 판별하는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여기서 상황의 본질을 다른 시각으로 한 번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과연 모방이 극도로 늘어나는 것은 언제일까? 그것은 바로 창조보다 모방이 경제성을 가지는 한편, 법이 사회 변화를 못 쫓아가는 문화 지체현상이 교차할 때일 것이다. 신약을 따라 만들기에는 특허나 연구개발 비용으로 보호되고 있으므로 복제약은 특허 취득 20년 후에 다른 회사에서도 만들게 된다. 비아그라를 처음 만든 화이자는 독점이었지만, 특허 만료 후에 화이자의 시장 점유율은 73%포인트나 줄어들었다. 아이폰의 대표적 혁신 중 하나였던 두 손가락으로 사진을 확대하는 기능은 멀티터치로 가능했고, 발 빠르게 특허를 등록해둔 애플은 경쟁사에 10억 달러의 배상금을 받게 되었지만, 그렇게 보호하지 못한 수많은 제품, 광고, 패키징 등은 수많은 회사들이 출시와 동시에 벤치마크하고 있다. 결국 독창적인 가치와 함께 보호 수단을 준비해두지 못하면 모방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스타트업계는 특히 겨울을 맞고 있다. 주변만 보더라도 초기 시간을 투자나 작은 이익으로 버텼던 회사들은 과거에 비해 얼음장 같은 시선의 평가를 받고 있고, 그렇지 못했던 회사들은 기회를 발산하기도 전에 스러져간다.

 독창적 가치를 만든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도 어렵다. 유통으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연결된 세상에서 더더욱 한계가 뚜렷하다. 콘텐츠 시대를 꿈꾸는 사람들은 제도가 보호해주기 전까지는 약육강식의 정글에 노출되어 있다. 제도적 체계뿐 아니라, 기업가의 집념과 창의가 더 장려되는 세상,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보다 존중을 더 받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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