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온ㆍ오프라인으로 진행한 세계 최대 전자ㆍIT 전시회 CES 2022가 사흘간 일정을 마치고 7일(현지시각) 막을 내렸다. 메타버스부터 인공지능(AI), 로봇 등 미래를 주도할 새 기술과 기업들의 청사진을 엿볼 수 있는 무대였다.
올해 CES의 키워드는 △Covid-19(코로나) △Expansion(확장) △Sustainability(지속가능성)까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예년보다 썰렁한 전시장…韓 기업 존재감은 ‘UP’=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병행한 이전 행사는 현장에 부스를 차질 일부 기업의 과감함이 돋보였다. 그러나 미국 전역을 뒤덮은 ‘오미크론 변수’까지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구글과 △아마존 △메타플랫폼(구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등 주요 IT 기업과 함께 완성자 제조사 미국 △제너럴모터스(GM), 자율주행 자동차 기술 업체 △웨이모,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 등이 대거 불참하며 빈 부스가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GM은 메리 바라 이사회 의장이 기조연설에 나섰지만, CES 2022에 부스를 차라지 않았다. 행사에 맞춰 다양한 전기차를 별도로 소개하는 수준으로 행사를 갈음했다.
특히 행사에 참여한 중국업체의 수는 6~7년 전과 비교해선 10분의 1 수준, 2년 전보다는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행사 진행 중에도 코로나19의 그림자는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CES 참관객은 모두 백신 접종 완료 확인서를 입장 전에 제출해야 했다. 각 기업 전시관마다 들어갈 수 있는 인원 제한도 있었다. 기업들은 QR코드나 키오스크 등 자사 기술을 통해 전시관 입장 인원을 관리하기도 했다.
주최 측인 CTA(소비자기술협회)는 코로나19 방지를 위해 악수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주먹 인사만 원하는 사람, 악수를 원하는 사람 간 소통을 위해 ‘악수 확인 스티커’를 행사장 전면에 배치하기도 했다.
예상치 않은 반사이익도 있었다. 내실 있는 전시를 준비한 한국 기업이 관람객들의 이목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끌었다. CES에 참여한 국내 기업 수는 500여 개로, 미국(1300여 개)에 이어 두 번째. 과감하게 오프라인 행사를 주도하며 주목을 받았다.
특히 매년 CES에서 이슈 선점을 놓치지 않았던 삼성전자와 현대차ㆍ두산 등 대기업은 물론, 중견과 중소기업까지도 예년보다 많은 이목을 끌었다.
이와 달리 늘 CES 행사장에서 국내 기업의 맞수로 등장했던 중국기업은 올해 혁신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샤오미와 화웨이 등 대표 IT 기업들은 애초 부스도 열지 않았다.
◇신사업 없인 못 살아남는다…위기감이 불러온 혁신=이번 전시에선 자사의 주력 상품이 아닌, 상용화를 진행 중인 미래 기술을 출품한 기업이 유독 많았다. 현재 잘하고 있는 영역은 유지하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먹거리를 이른 시일 내 개발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움직임이다.
일본 전자업체 소니는 전시관 중앙에 전기차 두 대를 전시하며 전기차 시장 진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이번 행사에서 소니가 공개한 전기차 ‘비전 S-2’는 소니의 고감도 센서, 라이다 센서 등을 대거 적용해 인식 능력을 높였고, 개인 맞춤형 이용 환경을 제공한다.
사이드미러도 없애고 카메라 기반의 화면으로 바꿨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기능도 담았다.
다만 완성차 업계에서는 소니가 전기차를 앞세워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기보다 더 많은 고객사를 상대로 자사의 다양한 첨단 전자기기를 판매할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소니 전기차는 판매 목적 대신 하나의 커다란 '카탈로그'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졌다.
독일 전장기업 보쉬도 우주 공간에서 사용하는 센서 시스템 ‘사운드시’를 주력 제품 중 하나로 전시했다.
현대차도 자동차 대신 로보틱스 기술을 전시 전면에 내세웠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직접 나서 “로보틱스는 더는 머나먼 꿈이 아닌 현실”이라며 “로봇이 점점 인간과 가까워지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사용자의 이동 경험이 혁신적으로 확장되는 ‘메타모빌리티(Metamobility)’ △사물에 이동성이 부여된 ‘MoT(Mobility of Things)’ 생태계 △인간을 위한 ‘지능형 로봇’ 등 로보틱스 청사진을 구체화하기도 했다.
전통적 중공업 기업인 두산과 현대중공업그룹도 로봇과 수소 사업을 앞세웠다.
두산은 수소 충전과 발전, 전기차 충전, 스마트팜 운영까지 가능한 트라이젠(Tri-Gen)을 공개했고, 현대중공업그룹은 자율운항기술, 액화 수소 운반, 지능형 로보틱스를 기업의 향후 3대 축이라고 공언했다.
정기선 현대중공업지주가 CES에 직접 참가해 올해 1분기까지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 대형선박으로 대양 항해를 마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삼성전자 역시 전시에서 AI와 로봇 비중을 높게 다뤘다.
처음으로 공개된 삼성의 AI 아바타는 온디바이스(On-Device) 대화 인식, 사물인터넷 가전 제어 기능을 갖춰 많은 관심을 끌었다. 사용자 곁에서 함께 이동하며 보조하는 기능과 원격지에서 사용자가 로봇을 제어할 수 있는 텔레프레즌스 기능을 갖춘 '삼성 봇 아이' 역시 이번 전시 중 가장 인기 많은 화젯거리였다.
CES 행사 자체의 사업 영역도 넓어졌다.
주최 측인 CTA는 이번에 처음으로 전시 기술 영역에 '우주기술'을 추가했다. 덕분에 가전·IT 전시회장 한복판에 '우주 왕복선'이 진열된 진풍경도 볼 수 있었다. 미국 우주항공기업 시에라 스페이스의 '드림 체이서'가 그 주인공이다. 실제 크기를 그대로 본떠 만든 압도적인 실물 크기에 이목이 쏠렸다.
◇"기술만 진보해선 안 된다" 한목소리 낸 기업들=이번 CES 기간엔 코로나19를 전후로 뒤바뀐 삶의 양식은 물론, 중요도가 부쩍 커진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경영을 향한 기업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개막 하루 전날 기조연설에 나선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회사의 미래 비전을 '지속가능성'이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는 “기술은 빠르게 진보해왔지만, 모두가 보았다시피 진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라며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연 생태계와의 균형”이라고 강조했다. 2025년까지는 모든 모바일ㆍ가전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재활용 소재를 사용하고, 글로벌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와 협력해 미세 플라스틱 배출 저감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사상 처음으로 6개 계열사(SK텔레콤, SK㈜, SK이노베이션, SK E&S, SK하이닉스, SK에코플랜트)가 CES에 참가한 SK그룹은 아예 부스 주제를 '탄소 중립'으로 잡았다. 자작나무 숲을 콘셉트로 푸르게 꾸며진 부스에선 각사의 주요 제품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각 기업 활동에서 탄소를 감축해온 여정과 성과, 앞으로의 계획이 주된 전시 내용이었다.
LG전자는 아예 '제품 없는 전시'라는 파격적인 기획을 올해 전시에서 선보였다. 2000㎡ 규모에 달하는 전시 부스 전체를 나무 찌꺼기를 눌러 붙여 만든 OSB(Oriented Strand Board) 합판으로만 채운 것이다. 환경을 생각하는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경영을 바로 보여주기 위한 시도였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