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시각] 외로움, 그 흔한 질병

입력 2020-12-3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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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인문학 저술가

세밑에 소식이 끊긴 한 친구가 연락이 닿아 만났다. 상업학교를 나와 은행지점장을 끝으로 은퇴한 친구다. 소년시절 상업학교에서 만난 우리는 귀밑머리가 센 모습으로 다시 만났으니 감회가 없을 수가 없다. 우리는 두런두런 지난 얘기를 나누었다. 일찍이 상처하고 인연을 만나 새 가정을 꾸린 것, 세 아들은 바르게 잘 커서 첫째는 내과의사로, 둘째는 외국계 금융회사 부장으로, 셋째는 사립대학 공대 교수로 제 밥벌이를 한다는 것, 명민한 두뇌와 침착한 성격대로 노후 대비도 잘해서 별 걱정이 없다는 것…. 돈 워리 비 해피. 그의 인생 위로 시대는 급류처럼 흘러갔고, 그 거친 흔적이 어딘가에 있겠지만 겉보기에 그의 인생살이는 평탄해 보였다. 그는 주말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산행을 하거나 당구를 친다고 말했다. 대인관계도 원만해 보였다. 인생 후반기의 지복을 자랑하던 그가 불쑥 외롭다고 했을 때, 나는 그에게서 튀어나온 외롭다는 말이 생경했다. 그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나 외로워, 정말 외로워. 제발, 외로움에서 나를 꺼내줘.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외로움의 고통을 호소하는 그의 말에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나는 친구에게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했다. 친구와 헤어져서 돌아오는 내내 ‘외로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외로움이 노인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젊건 늙건 간에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 속에서 살아간다. 외로움이 낳는 우울, 고립감, 피해망상에 시달리며 진절머리를 치는 사람들. 외로움이 죽음을 낳는 질병은 아니지만 외로움은 사람이 겪는 다양한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다. 장기간 외로움에 노출되면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같은 호르몬의 분출로 생리적인 변화를 겪을 수 있다고, 의사들은 경고한다. 외로움은 가난이나 학대만큼이나 인생을 좀 먹고 피폐하게 만든다. 특히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외로움은 더 심각한 결과를 낳는데, 그것은 외로움이 노화를 재촉하고, 면역 체계를 약화시키며, 인지 능력에 손상을 입히기 때문이다. 외로움이 인생을 망가뜨리는 요인인 건 알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그것에서 벗어나는지를 모른다.

파리 지하철 공사가 해마다 공모하는 시 콩쿠르에서 1등으로 뽑힌 ‘사막’이라는 짧은 시는 외로움에 대해 쓴 것이다. “그 사막에서 그는/너무나도 외로워/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오르탕스 블루) 사막에서의 외로움을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시다. 누군가는 텅 빈 집이 견딜 수가 없어 잠들기 전에 늘 텔레비전을 틀어놓는다고 했다. 오늘날 외로움은 도시에 살건 오지에 살건 누구나 겪는 보편적 현상이다.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의 ‘그로칼랭’이라는 소설에는 외로움에 사무친 주인공이 비단구렁이와 동거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타인과의 친밀한 교류와 사랑을 열망하지만 그것에 실패하는 주인공은 비단구렁이에게 제 애정을 쏟아 붓는다. 이 작품은 현대인의 고독에 대한 우화이고 사회의 비인간화에 대한 경고의 외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로칼랭’을 읽으면서 나는 외로움이란 얼마나 기이하고 처연한 것인가를 느꼈다. 아울러 이것이 문명이 만들어낸 잉여와 소외의 질병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집에 돌아와서 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올리비아 랭이 뉴욕이라는 도시 체험에 바탕을 두고 쓴 ‘외로운 도시’를 읽었다. 누구나 흔하게 겪는 경험인 외로움은 현대사회에서 사소한 불행의 한 형태이고, 널리 퍼져 있는 만성 질병 중 하나다. 사람 하나하나는 단독자이고, 고독은 실존에서 떼어낼 수 없는 한 부분이다. 랭은 연인과 뉴욕에서 살다가 실연을 당하고 혼자 살며 ‘외로움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과 마주했다. 고독과 외로움을 구분하지 않고 같은 뜻으로 쓰는 랭은 말한다. “고독 자체가 하나의 도시라는 것을.” 도시가 고독한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 아니라 고독이 곧 도시다. 뉴욕이나 서울, 혹은 베이징이나 도쿄 같은 수백, 혹은 수천 만 명이 밀집해 사는 편마암과 콘크리트와 유리벽으로 만들어진 도시에서 사람들은 고독이라는 내적 고립에 빠진다. ‘고독사’가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곳이 도시다. 서울 상공에 휘황한 폭죽이 연신 터지며 서울올림픽 폐막식이 열리던 시각에 한 시인은 서울 변두리 한 주택 양변기 위에 앉은 채 혼자 고요하게 숨을 거두었다. 도시는 외로움으로 충만한 또 다른 사막이다. 도시는 인파로 북적이지만 사람들이 교류 없이 고립된 채로 살아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고독이 인생에서 자양분을 빨아먹으면서 뚱뚱해지는 동안 우리는 얇아지고 야위어간다. 삶의 안쪽에 콜타르처럼 들러붙은 외로움은 인생에 실패했다는 좌절감에 빠트리며 자주 삶을 공허하고 얇은 것으로 빚어내는 것이다.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해리 스택 설리반은 “인간적 친밀함의 필요가 부적절하게 방사되는 것과 연결되는, 지독하게 불쾌하고 강력한 체험”이 고독이라고 정의한다. 랭은 도시 풍경, 즉 호텔, 카페, 레스토랑, 주유소, 교외 주택, 기차 안에 고독한 사람이 등장하는 ‘도시의 아침’이나 ‘밤의 창문들’ 같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을 좋아한다. 호퍼 작품의 원천이 고독이라는 주장은 타당한가? 호퍼는 소통의 단절과 고립, 소외 의식, 즉 도시에서의 고독을 핵심 체험으로 탐색한 화가다. 호퍼의 그림에 등장하는 도시 거주민들은 아무 소통도 하지 않은 채 따로 떨어져 있다. 호퍼의 그림은 미국적 고독을 재현하고 복제한다. 휘트니 미술관의 큐레이터인 카터 포스터는 ‘호퍼의 드로잉’에서 호퍼의 말을 전해 준다. “타인들과 신체적으로 가까이 있지만 동작, 구조, 창문, 벽, 빛, 어둠 등 다양한 요인들 때문에 그들로부터 격리되는 데서 기인하는, 뉴욕에서는 흔한 특정한 공간과 공간적 체험”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예술은 우리를 고독에서 구원할 수 있을까? 에드워드 호퍼에서 앤디 워홀까지 도시 고독의 기록자인 예술가의 내면을 탐색한 랭이 독자에게 던지는 궁극적인 질문은 그런 것이다. 예술은 대도시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 폭력과 살인, 더 나아가 기후 재난, 바이러스가 퍼뜨리는 전염병의 역습 따위에서 우리를 보호하지 못한다. 예술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거나 병든 이를 치유할 수도 없지만 예술은 우리들 사이에서 증발해 버린 친밀감을 되살려내고,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어 중재하는 기묘한 능력을 발휘한다. 예술가만큼 외로움에 민감한 족속이 있을까? 평범한 사람들은 고독을 한사코 피하려고 들지만 예술가들은 외로움은 자기 예술의 질료로 삼고, 고독과 투쟁하며 그 속에서 고독의 역량을 키운다. 그들은 한없이 나약하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 강한 전사들이다.

나는 외롭게 살다 죽은 예술가들을 떠올리며,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한다. 비천하고 야만적인 세계에서 고독하게 살다 죽은 이들은 우리의 외로움을 알아주고, 외로움 속에서 허덕이는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사람들이다. 김소월, 윤동주, 김관식, 천상병, 박정만, 기형도 같은 비운의 시인들이나 가객 배호, 김광석, 조각가 권진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천재 작곡가 에릭 사티, 시인 아틸라 요제프의 이름을 혼자 불러본다. 나는 “품에 안겨 입에 젖을 문 사람/젊은 여자의 단단한 가슴을 쥐고 있는 사람/빈 접시를 내던지는 사람/가난한 사람들이 이기도록 돕는 사람/몸이 부서지도록 일하는 사람/밤새도록 달을 바라보는 사람”을 노래하는 헝가리 시인 요제프의 시집 ‘일곱 번째 사람’을 사랑한다. 다시 친구를 만나면,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32세로 달리는 화물열차에 뛰어들어 생을 마친 요제프의 시집을 선물로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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