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영 명예회장은 형제들과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걸었다. 크고 작은 기업체를 물려받은 일가(一家)와 달리 창업을 통해 지금의 KCC를 일궈냈다.
KCC의 전신은 1958년 정 명예회장이 설립한 금강스레트공업이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이른바 왕 회장의 해외유학 권유를 뿌리치고 이 회사를 세워 슬레이트(지붕에 사용되는 돌판), 유리 등 건축자재사업을 시작했다. 50여년이 지난 현재 건자재·도료·유통(실리콘, 홈씨씨) 사업 등에서 23개의 국내외 계열사를 거느린 자산규모 7조원 이상의 그룹사로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매출액 3조3700억원과 영업이익 1431억원을 기록했다.
◇ 자유연애에 관대, 독립군 집안과 인연 = 정상영 명예회장은 창업 초기부터 공장 직원들과 동고동락했다. 1970년대 시작된 새마을운동으로 주택 현대화 바람이 불자 슬레이트 주문은 쉴 틈 없이 밀려들었다. 정 명예회장은 ‘금강스레트’를 직접 찍어내며 직원들과 밤을 새기 일쑤였다.
이때 정 명예회장 곁을 지킨 사람은 조은주(77) 여사다. 정 명예회장과 조 여사는 연애결혼을 했다. 조 여사는 독립운동가의 외손주이자 한국전쟁 때 전사한 군인 집안의 여식이었다.
조 여사가 정 명예회장을 만난 것은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현대건설 경리팀에서 근무할 때였다. 결혼 후에도 ‘젊은 사장’을 남편으로 둔 덕에 공장의 허드렛일은 그녀의 몫이었다.
그녀는 20년 넘게 슬레이트공장 인부들의 밥과 새참을 손수 지어가며 정 명예회장의 안사람 노릇을 했다. 혹자들이 조 여사를 ‘내조의 여왕’이라는 부르는 이유기도 하다.
◇ 가업 이은 3형제… 둘째 며느리만 재벌가 = 정상영 명예회장은 2000년부터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슬하의 3형제에게 사업을 맡겼다.
장남인 정몽진(53) KCC 회장은 2000년 그룹을 넘겨받았다. 정 회장은 당시 ‘금강’과 ‘고려화학’의 합병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정 회장은 미국 조지 워싱턴대 경영학석사(MBA)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고려화학 이사로 재직했다. 영어·중국어·러시아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한 정 회장은 현재 ‘글로벌 KCC’를 이끌어가는 주역이다.
정 회장은 홍은진(49)씨와 음악을 인연으로 백년가약을 맺었다. 평소 음악을 즐기던 정 회장은 주변 지인들의 소개로 서울대 음대에서 플루트를 전공한 홍씨를 만나게 됐다. 은진씨는 떠 먹는 아이스크림 ‘퍼모스트’로 유명한 옛 대일유업 사장의 딸이다.
차남인 정몽익(51) KCC 사장도 형과 마찬가지로 조지 워싱턴 대학교를 나왔다. KCC그룹 입사는 형보다 2년 빠르다. 정몽익 사장은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회장의 외조카인 최은정(50)씨와 결혼했다. 은정씨는 최현열(79) NK그룹 전 회장과 신격호 회장의 넷째 여동생 신정숙(75) 여사의 차녀다.
정 사장과 은정씨의 결혼은 한진가와도 혼맥을 이룬다. 은정씨의 언니가 한진해운의 최은영(51) 회장이기 때문이다. 고(故) 조수호 회장이 정 사장의 손위동서인 셈이다.
3남인 정몽열(49) KCC건설 사장은 ‘스위첸’ 브랜드로 주택시장에서 KCC를 자리 잡게 한 주역이다. 정몽열 사장은 중소기업 사장의 딸인 이수잔(43)씨와 혼인했다. 큰동서와 마찬가지로 수잔씨도 서울대에서 예술가(미술 전공)의 꿈을 키웠다. 여자들의 외부 활동을 꺼려하는 가풍의 영향 탓인지 현재 3명의 며느리 모두 내조에 전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