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연극 '푸르른 날에', 웃음으로 보듬어 낸 5·18 광주의 비극

입력 2012-05-0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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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 신파로 재조명…초연의 아쉬움 완성도 더해

▲우리의 아픈 역사 5·18을 '21세기 신파극'으로 과감히 재해석한 연극 '푸르른 날에'가 2012년 5월, 1년 만에 남산예술센터에서 관객과 만난다.
1980년 5월18일 일요일, 전남라도 광주시.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성난 청춘들과 계엄군의 대립에서 출발해 광주 그리고 대한민국 민주사의 피맺힌 역사로 기록된 5·18 광주민주화항쟁이다. 계엄군의 워커아래 스러진 학생들의 저항사는 그간 수많은 작품을 통해 재현돼왔다. 30여년이 지난 21세기, 그 아픈 상처를 웃음으로 어루만진 연극 ‘푸르른 날에’(남산예술센터·신시컴퍼니 공동제작)가 2011년 초연 이후 1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적막한 불당 안, 칠흑같은 어둠 속에 중년의 승려가 홀로 불공을 드리고 있다. 그리고 객석을 가로질러 승려를 찾아온 사내는 홀로 대사를 쏟아내다 급기야 헛기침을 해대며 자신이 방문을 알리지만 승려는 답이 없다. 사내의 고군분투에 객석이 초토화될 무렵 승려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초연하게 사내에게 몸을 돌려 목례를 한다. 우리의 아픈 역사 5·18을 ‘21세기 신파극’이라는 과감한 시도로 재조명한 연극 ‘푸르른 날에’의 출발이다.

◇생애 첫 충격파 = 근엄한 승려가 무대 위를 개구리마냥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다도를 제대로 배운 ‘아이’가 내놓은 찻잔이 테이블 위를 날아다니며 폭소로 시작한 연극은 시종일관 웃음 포인트가 가득하다. ‘푸르른 날에’의 매력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다. 5·18을 자료를 통해서 피비린내 나는 아픔으로만 배웠던 21세기의 20대 청춘들은 2011년 초연당시 이 무대를 통해 아버지세대의 울분을 한층 편안하게 이해하고 더 깊이 공감했다.

‘푸르른 날에’는 입이 떡 벌어지게 똑똑한 작품이다. 역사적 사실에 웃음을 더해 쉽게 재해석하면서 벌어지는 실수도 없다. ‘푸르른 날에’의 웃음은 당시를 공감하지 못하는 신세대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 딱 그만큼의 정도를 정확히 지켰다. 과도한 희화로 당시 광주의 아픔을 몸으로 겪은 아버지 세대들에게 불쾌감을 안기는 과오는 찾아볼 수 없었다. 5·18을 처음 접하는 아이세대, 아픔을 간직한 아버지세대 모두에 기분 좋은 충격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시 만나는 감동 = 차범석 희곡상 제 3회 수상작인 ‘푸르른 날에’는 앞서 지난 2011년 5월 서울시창작공간 남산예술센터의 드라마센터에서 초연된 이후 주요 연극상을 휩쓸었다. 1년 만에 돌아온 ‘푸르른 날에’는 초연의 아쉬움으로 남겼던 거친 장면들은 섬세함을 더해 완성도를 높였다. 주인공 남녀의 신파 역시 좀 더 통속적으로, 좀 더 디테일하게 표현돼 재관람 관객에게도 만족도를 안길 법하다.

초연당시 객석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던 장점들은 그대로 앉혔다. 연출가 고선웅 특유의 “아, 저기 저 여자는 푸르른 날의 나, 윤!정!혜!”와 같은 과장된 작위적 어법의 매력에 빠진 관객이라면 1년 전 향수에 푹 젖을 기회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재공연의 일등공신인 김학선(여산 역), 정재은(정혜 역), 이영석(일정 역), 이명행(오민호 역) 등 출연진이 다시 의기투합해 또 한 번의 열연을 펼친다. 5월20일까지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된다.

◇연극 '푸르른 날'에는… = 차밭이 보이는 암자에서 수행 중인 승려 여산(과거의 오민호)은 조카이자 ‘딸’인 운화의 결혼 소식을 듣는다. 그의 기억은 30여 년 전 전남대를 다니던 야학 선생 시절로 돌아간다. 당시 민호는 전통찻집 아르바이트생인 윤정혜와 사랑에 빠져 있었고 정혜의 동생 기준은 민호를 친형처럼 의지하고 있었다. 5월 18일 광주민주화 항쟁이 터지고 그 소용돌이 속에 정혜는 민호를 떠나보내고 도청을 사수하던 민호와 기준은 운명이 나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비겁한 자가 된 민호는 고문 후유증과 함께 정신이상을 겪고 삶을 포기한다. 자신을 들여다볼수록 진흙탕이고 거부하고 싶은 생. 결국 민호는 속세의 자신을 버리고 불가에 귀의한다. 민호와 정혜 사이에 생긴 딸 운화를 친형 진호가 거두었지만, 세월이 흘러 운화의 결혼에 이르러서는 끊을 수 없는 속세의 인연에 애달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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