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젠지 열광한 '원사이즈' 옷 가게, 한국서도 성공할까? [솔드아웃]

입력 2024-08-0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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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화제 되는 패션·뷰티 트렌드를 소개합니다. 자신의 취향, 가치관과 유사하거나 인기 있는 인물 혹은 콘텐츠를 따라 제품을 사는 '디토(Ditto) 소비'가 자리 잡은 오늘, 잘파세대(Z세대와 알파세대의 합성어)의 눈길이 쏠린 곳은 어디일까요?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켄달 제너, 카이아 거버, 그리고 블랙핑크 제니까지…

글로벌 트렌드 아이콘으로 손꼽히는 스타들입니다. 이들은 1000만 명에서 3억 명에 달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데요. 인스타그램 사진과 영상 속 무심하게 걸친 옷부터 신발 등 패션 아이템부터 라이프 스타일은 화제를 빚으며 전 세계 곳곳에서 '품절 대란'을 일으키고 있죠.

그중에는 수백만~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아이템이 즐비하지만,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의 아이템도 포착돼 눈길을 끄는데요. 세 인플루언서 모두 착용한 브랜드, '브랜디 멜빌(Brandy Melville)'이 대표적입니다.

여성 패스트 패션 브랜드 브랜디 멜빌은 현시점 미국 젠지 세대가 가장 열광하는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아기 옷(?) 같은 티셔츠, 도대체 뭘 가릴 수 있는 건지 의심이 되는 반바지 등 손바닥만 한 옷으로 가득한 매장은 현지인들은 물론 관광객까지 쉴 새 없이 방문하는데요.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매장이 없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직구 방법을 정리해놓은 '꿀팁'이 공유되기도 하죠.

최근엔 반가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브랜디 멜빌이 한국에 상륙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겁니다.

▲(출처=제니, 켄달 제너, 브랜디 멜빌 공식 인스타그램, 유튜브 채널 '하이슬기 Hi Seulgi' 캡처)
▲(출처=제니, 켄달 제너, 브랜디 멜빌 공식 인스타그램, 유튜브 채널 '하이슬기 Hi Seulgi' 캡처)

대학 앞에서 문 연 이유 있었다…어린 학생→팝스타까지 홀려

브랜디 멜빌은 실비오 마르산과 그의 아들 스테판이 1980년대 이탈리아에서 설립한 패션 브랜드입니다. 이들은 최고경영자(CEO)로 회사를 이끌고 있는데요. 사람 이름을 연상케 하는 사명은 브랜드의 스토리텔링에서 비롯됐죠. 미국인 소녀 브랜디가 영국인 소년 멜빌과 이탈리아에서 사랑에 빠진다는 로맨틱한 이야기에 기반을 둡니다.

이 브랜드의 콘셉트는 간단합니다. 기본적이면서도 트렌디한 옷을 선보는데요. 트레이닝 팬츠, 스웨트셔츠처럼 일상에서 툭툭 활용하기 좋은 옷부터 배가 드러나는 크롭 티셔츠, 딱 달라붙는 짧은 반바지 등을 출시하죠. 전 세계에 다시 분 Y2K 열풍에 탑승하면서 더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마치 속옷을 연상케 하는 미니 리본, 레이스나 프릴 같은 세심한 디테일도 인상적입니다. 생긴 건 평범하지만, 막상 입으면 하이틴 영화나 드라마가 떠오르는 쾌활하고 사랑스러운 감성이 가득하다는 평입니다.

'가성비'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부분 10~40달러 수준의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데요. '면 100%'로 이뤄진 옷이 많아 부드러운 소재로도 인기를 끌고 있죠.

배우 릴리 로즈 뎁, 소피아 리치, 모델 카이아 거버, 켄달 제너, 헤일리 비버 등 Z세대 사이 큰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스타들이 애용하는 브랜드이기도 한데요. 국내에서는 블랙핑크 멤버 제니, 로제, 레드벨벳 슬기가 즐겨 착용하면서 눈길을 끌었죠.

이들이 일상에서 브랜디 멜빌의 옷을 입은 모습은 이른바 '핀터레스트 감성'으로 통하며 화제를 빚곤 합니다. SNS 플랫폼 핀터레스트에서 볼 수 있는 무심하면서도 감성 가득한 스타일이라는 건데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로 설명할 수도 있겠네요.

브랜디 멜빌이 미국에 첫 번째 매장을 오픈한 건 2009년입니다. 매장 오픈과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요. 위치 선정이 기가 막혔습니다. UCLA 캠퍼스가 있는 로스앤젤레스(LA) 웨스트우드 지역에 자리를 잡으면서 10대~20대 젊은 대학생들 사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죠. 브랜디 멜빌은 미국에 첫 매장을 론칭한 뒤 불과 10년 만에 미국 내 36개의 매장을 포함, 전 세계에 94개의 지점을 뒀습니다. 유럽, 호주, 캐나다 등 세계 10여 국에 진출해 있는데, 아시아권에서는 중국, 일본, 홍콩 등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출처=브랜디 멜빌 공식 인스타그램)
▲(출처=브랜디 멜빌 공식 인스타그램)

Z세대 사이 '선망'을 심어라…브랜디 멜빌이 인기 얻은 '진짜 이유'

그러나 인기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사실 이 브랜드의 옷은 오직 한 사이즈로만 나옵니다. '엑스트라 스몰'(XS) 혹은 '스몰'(S) 정도의 원 사이즈 정책을 고수하기 때문인데요. 우리나라로 치면 44~55 사이즈가 되겠네요. 미국 의류 브랜드는 보통 아시아 여성 체격에 비해 한 사이즈 이상 크다는 점을 감안해도, 마른 모델과 인플루언서들의 몸에 꼭 맞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사이즈가 작긴 작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이 정책은 생산과 물류 과정 등에서 속도를 높이고 비용까지 절감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마케팅 효과가 대단했는데요. Z세대 사이 '브랜디 멜빌은 날씬한 여성들만 입는 옷'이라는 이미지가 구축된 겁니다.

국가를 막론하고 10대 사이에선 '날씬함'에 대한 욕망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각종 방법으로 자신의 날씬함을 증명(?)하는 틱톡 챌린지가 유행했죠. 대표적인 게 '레깅스 레그 챌린지'인데요. 다리 전체에 딱 달라붙는 레깅스를 착용한 후 두 발을 모으고 섰을 때 허벅지가 붙지 않고 간격이 생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마른 몸을 이상향으로 정하고 이를 자랑스럽게 인증하는 거죠. 중국 SNS에서도 이어폰 줄로 허리를 묶는 '이어폰 챌린지', 'A4용지로 허리 가리기' 등이 유행했습니다.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SNS를 타고 비현실적인 미의 기준이 유행하면서, 몇 년 전부턴 '프로아나'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프로아나는 찬성을 뜻하는 프로(pro)에 거식증(anorexia)을 더해 만든 신조어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체중을 감량하는 이를 일컫는 말입니다.

브랜디 멜빌은 이처럼 날씬한 몸을 추구하는 전 세계 Z세대의 욕망을 원동력 삼아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이곳의 연간 매출은 2019년에서 1억6960만 달러에서 지난해 2억1250만 달러로 증가했죠.

SNS 운영 방식도 인기 요인 중 하나입니다. 브랜디 멜빌 공식 인스타그램을 보면 이게 공식 계정이 맞는지 의문이 드는데요. 배경도 다양한 데다가 자유로운 분위기, 수많은 모델이 눈에 띕니다.

대다수의 게시물은 '재게시'된 겁니다. 소비자들이 자사의 옷을 입고 올린 사진과 영상을 공식 계정에 다시 올리는 건데요. 소비자들은 이곳의 옷을 사 입고 사진을 찍으면서 공식 계정에 자신의 모습이 게재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인스타그램에 'brandymelville' 해시태그는 80만 개에 달하는데, 이곳의 옷을 입고 모델처럼 포즈를 잡은 이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죠. 브랜디 멜빌의 미국 계정은 약 317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물류 창고를 카페로 개조한 성수동 카페 ‘대림창고’의 모습. (연합뉴스)
▲물류 창고를 카페로 개조한 성수동 카페 ‘대림창고’의 모습. (연합뉴스)

다양성 논란에 '제2의 아베크롬비' 언급도…한국서도 성공할까?

브랜드가 인기를 끌면서 사이즈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3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국 10대 소녀 사이에선 브랜디 멜빌의 옷을 입을 수 있는지가 인기의 척도로 여겨진다"고 보도했습니다.

인디애나주에 사는 안나(17)는 WSJ에 "친구들은 모두 브랜디 멜빌을 입고 학교에 간다"며 "이 옷은 지위의 상징"이라고 말했는데요. 뉴저지에 사는 레이첼(12)도 "브랜디 멜빌을 입으면 스타일이 좋고 인기가 많아져 사람들이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고 전했죠. 대학생인 알리 로누도 "한때 브랜디 멜빌을 입고 싶어 체중 감량을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WSJ은 "이 브랜드는 마른 체형의 10대들에게 하여금 자신의 체형을 '특권'으로 여기게 한다"며 "브랜드의 마케팅 전략이 외모 차별주의를 가속화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인종 차별과 관련한 논란도 불거졌습니다. 모델이나 가게 점원으로 금발의 마른 백인 여성을 내세우는 마케팅(?)을 펼친다는 건데요. 실로 브랜디 멜빌은 차별적 고용 지침으로 미국에서 소송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 회사 미국 법인에서 근무하던 루카 로톤도는 3월 WSJ 등을 통해 "전형적인 백인 10대 소녀에 해당하지 않는 외모의 직원을 해고하라는 지시에 불응하자, 회사가 나를 잘랐다"고 소송을 제기한 사실을 밝혔죠.

4월 HBO 맥스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브랜디 헬빌 - 더 컬트 오브 패스트 패션'은 이를 포함한 브랜디 멜빌의 논란을 조명합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전 직원들은 매장에서 일할 당시 '마른 몸'을 지향하는 압박감으로 섭식 장애 등을 겪었다고 주장했는데요. 이들에 따르면 매일 근무 복장을 사측에 보내야 했는데, 사진 속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 백인 직원은 판매 업무를 맡았지만, 유색 인종 직원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역, 이를테면 창고를 맡았다는 폭로도 나왔죠.

이는 유럽과 북미 백인 체격에 맞는 옷만 제작해 판매하던 미국 캐주얼 의류 브랜드 '아베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를 연상케 합니다. 1990년대를 화려하게 주름잡았던 아베크롬비는 2010년대엔 고객 외모·인종 차별 논란에 휩싸이면서 미국 전역의 불매 운동까지 불렀습니다.

2006년 마이크 제프리스 당시 아베크롬비 사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쿨하고 인기 많은 아이들 위주로 마케팅하고 있다"며 "우리 매장에는 뚱뚱한 고객이 안 들어왔으면 한다. 그래서 '엑스 라지'(XL) 사이즈의 옷은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는데요. 이 발언을 미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인사이더가 재조명하면서 뭇매를 맞은 겁니다. 아베크롬비는 매장 지원을 뽑을 때도 외모를 차별했다가 벌금을 문 전적도 있습니다. 키가 크고 마른 백인만 고용한 거죠.

이에 앞서 아베크롬비는 '백인을 위한 브랜드'라며 2000년대 초까지만 '아시아, 아프리카에는 입점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자, 울며 겨자 먹기로 2010년 일본, 2011년 홍콩에 이어 한국에도 입점한 바 있습니다.

2017년 아베크롬비는 최고상품책임자(CPO)로 근무해온 프랜 호로비츠를 신임 CEO로 승진시키고 이미지 탈피에 힘썼습니다. 고객과의 소통을 중시해야 한다는 정책을 새로 신설하고 외모를 중시하던 고용 방식도 바꾸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실적을 끌어올릴 수 있었죠.

인기와 논란은 비례하는 걸까요? 외모 차별주의, 인종 차별 논란과 소송전까지… 아베크롬비와 닮은 브랜디 멜빌인데요. 원사이즈 논란을 의식한 듯 오버 사이즈 제품도 출시하고 있지만, 해소하지 못한 논란은 아직 숱합니다.

인기도, 논란도 많은 브랜디 멜빌은 다음 달께 한국에 상륙하는데요. 첫 매장의 유력한 후보지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으로 전해졌습니다. 국내 패션과 뷰티의 성지로도 불리는 동네에서 브랜디 멜빌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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