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 딛고 포효한 안세영인데…"감사하다" vs "실망했다" 엇갈린 소통 [이슈크래커]

입력 2024-08-0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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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 국가대표 안세영(왼쪽), 양궁 국가대표 김우진. (연합뉴스)
▲배드민턴 국가대표 안세영(왼쪽), 양궁 국가대표 김우진. (연합뉴스)

협회의 많은 관심과 지원으로 이룬 성과

협회, (선수들의) 모든 걸 막으면서 방임해

'2024 파리올림픽'에서 금빛 향연이 펼쳐지는 가운데, 선수들 사이 엇갈린 반응이 나왔습니다.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은 '협회의 성원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한 반면, 배드민턴 국가대표 안세영(삼성생명)은 '협회에 너무 실망했다'며 작심 발언을 쏟아낸 겁니다.

'세계랭킹 1위' 안세영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을 차지하면서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각종 인터뷰와 광고 제안, TV 츨연 요청도 빗발쳤죠. 그러나 이번 올림픽을 위해 고사하고 훈련에만 집중했습니다. 통증을 안긴 무릎 부상에도 묵묵히 대회를 준비해왔는데요. 5일(이하 한국시간)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세계 9위 허빙자오(중국)를 2-0(21-13 21-16)으로 제압했습니다. 안세영은 코트 위에서 포효했고, 경기를 지켜보던 이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선사했습니다. 한국 배드민턴의 올림픽 단식 종목 우승은 남녀를 통틀어 1996년 애틀랜타 대회 방수현 이후 역대 두 번째이자 28년 만입니다.

그러나 안세영은 금메달을 따자마자 기다렸단 듯 작심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대상은 대한배드민턴협회였는데요. 이들 사이 갈등이 정확히 드러나진 않았으나, 그 핵심에는 '소통' 관련 문제가 자리한 모양샙니다.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 라 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중국 허빙자오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한 한국 안세영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 라 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중국 허빙자오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한 한국 안세영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드민턴 금메달 1개, 돌아봐야 할 시점"…안세영이 꼬집은 '일방적 결정'

안세영은 배드민턴 여자 단식 시상식을 마치고 공동취재구역에서 "제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대표팀한테 조금 많이 실망했었다"면서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이랑은 조금 계속 가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해 충격을 자아냈습니다. 은퇴를 시사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는데요. 그는 이어진 기자회견에서도 "제가 부상을 겪는 상황에서 대표팀에 대해 너무 크게 실망했다.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고 밝혔죠.

앞서 안세영은 지난해 10월 천위페이(중국)와의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무릎을 다친 뒤 올림픽 준비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첫 검진에서는 2주 재활 진단이 나오며 큰 부상을 피한 줄 알았는데, 재검진 결과 한동안 통증을 안고 뛰어야 한다는 소견이 나왔다고 전했죠.

안세영은 재검진에서 부상 정도가 심한 것으로 드러났던 상황을 떠올리며 "처음에 오진이 났던 순간부터 계속 참으면서 경기했는데 지난해 말 다시 검진해보니 많이 안 좋더라"면서 "꿋꿋이 참고 트레이너 선생님이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털어놨는데요.

그는 "단식만 뛴다고 선수 자격을 발탁하면 안 된다. 협회가 모든 걸 다 막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임하고 있다"며 "우리 배드민턴이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금메달이 1개밖에 안 나왔다는 것은 돌아봐야 할 시점이지 않나 싶다"고도 짚었습니다.

안세영은 인스타그램을 통해선 "은퇴라는 표현으로 곡해하지 말아달라"면서 은퇴 해석엔 선을 그었는데요. 중요한 건 "선수들이 보호되고 관리돼야 하는 부분, 그리고 권력보단 소통"이라고 강조했죠.

안세영이 재차 언급한 건 '부상 관리'였지만, 이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합니다. 안세영의 문제의식은 대표팀 시스템 자체에 닿아 있었습니다.

안세영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잘 키워줬으면 좋겠다"면서 "선수에게 '이번이 기회'라고 말할 것만이 아니라 꾸준한 기회를 주면서 관리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먼저 그는 선수 육성과 훈련 방식이 단식, 복식별로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두 종목은 엄연히 다르기에 감독과 코치가 나뉘어야 하고, 훈련 방식도 각각 체계적으로 구분돼야 한다는 건데요. 동시에 "근력 운동 프로그램이 1년 365일 동안 똑같고, 배드민턴 훈련 방식도 몇 년 전과 똑같다"면서 "부상이 안 오게 훈련하든지, 부상이 오면 제대로 조치해주든지 해야 하는데 부상은 오고, 훈련은 훈련대로 힘들고, 정작 경기에는 못 나가는 식"이라고 토로했습니다. 훈련 방식 효율성까지 떨어진다는 겁니다.

전통적으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복식 종목을 중심으로 대표팀이 운영됐다고도 전했습니다. 안세영은 "항상 성적은 복식이 냈으니까 치료와 훈련에서 복식 선수들이 우선순위였다"며 차라리 개인 트레이너를 쓰고 싶다는 의견을 꾸준히 피력해왔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죠.

배드민턴협회의 일방적인 의사 결정도 비판했습니다. 안세영은 "제가 프랑스 오픈과 덴마크 오픈을 못 나간 적이 있었는데 제 의지와는 상관없었고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면서 "협회는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고 소통하지 않은 채 (명단에서) 뺀다"고 주장했습니다. 사후에라도 설명을 요구할 순 없었냐고 묻자 "물어보지도 못하는 시스템과 분위기다. 대회가 끝나면 끝인 상황에서 제가 물어볼 기회가 없다. 미팅조차 없다"고 강조했죠.

▲홍명보 한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명보 한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드민턴만 문제?…'밀실 행정' 논란 거셌던 축구협회

안세영과 배드민턴협회 사이 있었던 갈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부상을 포함한 선수 보호·관리부터 일괄적인 훈련 방식, 일방적인 의사 결정 등 수년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세영은 이번 '작심 발언'을 태극마크를 단 2018년부터 준비해왔다고 설명했죠.

하지만 배드민턴협회는 그동안 안세영에 대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줬다는 입장인데요. 이에 7일 배드민턴협회는 안세영이 귀국하면 면담 후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방침입니다. 논란이 확산하면서 향후 안세영과 협회·지도자 간 진실 공방으로 흐를 가능성도 염려되고 있죠.

스포츠에서 '소통'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입니다. 단순히 선수 개인의 능력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다수가 함께 협력하며 목표를 달성하는 활동이기에 선수는 물론 스태프와 지도자까지 원활한 소통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요. 실로 많은 리스크가 소통 부재에서 발생하는 실정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불투명한 의사 결정, 비효율적인 소통으로 뭇매를 맞은 대한축구협회입니다.

축구협회는 지난달 7일 축구대표팀의 차기 사령탑으로 홍명보 당시 울산 HD 감독을 내정한 뒤 이사회 의결을 거쳐 지난달 13일 공식 선임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는 적지 않은 잡음이 불거졌습니다. 특히 홍 감독의 선임 절차가 합리적이지 않았다는 논란이 거셌는데요. 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으로 사령탑 선임 과정에 함께 했던 박주호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국내 감독을 무조건 지지하는 위원들이 많았다. 외국인 감독을 제시하면 무조건 흠을 잡았다"고 폭로하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습니다. 새로운 감독을 선임하겠다는 목표를 지닌 전력강화위원회 안에서도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축구협회의 '밀실 행정' 논란도 일파만파 커졌죠.

홍 감독도 논란을 의식해 '소통'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지난달 29일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서 "팬들로부터 용서받는 방법은 대표팀의 성장과 발전을 이루는 것"이라며 "'존중, 대화, 책임, 헌신'이라는 키워드로 대표팀을 운영하겠다. 선수와 스태프, 선수 간, 스태프 간 수평적 관계를 만들겠다. 오해는 소통 부재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대화할 것이다. 대표팀에 대한 목소리는 항상 경청하겠다"고 다짐했죠.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 결승전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김우진이 정의선 현대차 회장에게 금메달을 걸어주고 있다. (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 결승전에서 승리해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 김우진이 정의선 현대차 회장에게 금메달을 걸어주고 있다. (연합뉴스)

"왜 이리 강한가" 질문에…양궁협회 '공정성' 꼽은 선수들

반면 격의 없는 소통, 물심양면 지원, 공정한 절차 등으로 호평을 받는 스포츠 협회도 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도 주목받은 대한양궁협회인데요. 한국 양궁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5개에 여자 개인전 은메달 1개, 남자 개인전 동메달 1개를 합쳐 총 7개의 메달을 수확하는 사상 최고 성적을 냈습니다. 자연스럽게 그 비결에도 관심이 쏠렸는데, 선수들은 '양궁협회' 언급을 빠뜨리지 않았죠.

선수들은 한국 양궁의 비결로 '현시점 가장 뛰어난 선수를 선발한다'는 원칙 아래 진행되는 공정한 선발 시스템을 첫손에 꼽았습니다. 단체전부터 혼성, 개인전까지 제패하며 대회 3관왕에 오른 김우진(청주시청)은 "양궁협회는 어느 선수나 선발전을 통해 국가대표가 될 수 있게 만들어준다. 공정하고 투명한 과정을 통해 과거 실적이나 이력 등의 계급장을 떼고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다"면서 "초, 중, 고등학교를 넘어 대학교와 실업팀까지 이어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준 것 자체가 한국 양궁이 최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개인전 금메달을 딴 직후에는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우리는 하나였다"며 "개인전 메달을 나 혼자 딴 게 아니다. 대한양궁협회를 포함해, 감독님, 코치님 선수들 모두 하나 돼 '이번 올림픽에 다 쏟아보자'는 느낌으로 왔다. 모든 게 다 잘돼 이런 결과물을 얻은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한국 양궁의 전 종목 석권 비결을 묻는 말에 "선대 회장(정몽구 명예회장)의 노력을 통해 구축된 양궁협회의 시스템"이라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협회와 선수들, 스태프들의 믿음이다. 서로 믿고 한마음으로 했기에 더 잘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정 회장은 평소에도 선수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선수들에게 직접 조언까지 아끼지 않는 등 정신적인 멘토 역할까지 하고 있는데요. 선수부터 스태프, 협회까지 그야말로 '원팀'이 된 모습이죠.

양궁은 단순히 협회와 선수 간의 소통, 믿음뿐 아니라 기업과 스포츠 단체 '상생'의 모범 사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양궁협회를 지원하는 현대자동차그룹은 국가대표팀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렴해 맞춤형 지원을 제공합니다. '2020 도쿄올림픽'이 끝난 직후인 3년 전부터 일찌감치 파리 대회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는데요. 양궁 경기장인 앵발리드 경기장을 재현한 실전 연습환경을 구축하고 첨단 연구·개발(R&D) 기술로 개발한 훈련장비, 축구장 소음체험 등 실전을 방불케 하는 특별 훈련, 파리 현지에서의 대표팀 전용훈련장, 식사, 휴게공간, 동선 등을 총망라했죠.

정 회장은 직접 준비 과정을 챙겨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개막식 전에 현지에 미리 도착해 우리 선수들의 전용 훈련장과 휴게공간, 식사, 컨디션 등 준비 상황을 꼼꼼히 점검했고, 양궁 경기 기간 내내 현지에 체류하며 모든 주요 경기를 관중석에서 지켜봤습니다.

핵심은 선수들과의 소통과 지원은 강화하면서도 선수 선발이나 협회 운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원칙은 체계적인 선발·훈련 시스템을 구축한 데 이어 '금메달 싹쓸이'라는 결과까지 낳았습니다.

안세영 역시 양궁협회와 대비되는 배드민턴협회의 모습에 씁쓸함을 삼킨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는 "배드민턴도 양궁처럼 어느 선수가 올림픽에 나가도 메달을 딸 수 있으면 좋겠다"며 "제가 목표를 잡고 꿈을 이루기까지 원동력은 분노였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안세영의 이번 발언 후폭풍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 고위 관계자는 6일 "윤석열 대통령도 보고를 받았다"고 언급했고, 문화체육관광부도 안세영의 인터뷰와 관련해 경위를 파악하기로 했는데요. 대회가 진행 중인 만큼 올림픽이 끝나는 대로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적절한 개선 조치의 필요성을 검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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