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민심-차가운 재판, 어떻게 봐야 할까 [서초동MSG]

입력 2024-07-2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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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전국 법원에서 다루는 소송사건은 600만 건이 넘습니다. 기상천외하고 경악할 사건부터 때론 안타깝고 감동적인 사연까지. '서초동MSG'에서는 소소하면서도 말랑한, 그러면서도 다소 충격적이고 황당한 사건의 뒷이야기를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의 자문을 받아 전해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제법 인기를 끌었던 ‘리갈하이’라는 법률드라마에서 세기의 악녀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두 번의 이혼과 전남편들의 의문사 의혹을 받고 있던 그녀는 현 남편에 대한 살인 및 그 딸에 대한 살인 미수의 혐의로 재판을 받는다.

언론은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얻은 남자들의 돈으로 호의호식하고, 보험금을 위해 살인까지 저질렀다며 연신 보도를 쏟아낸다. 변호인은 심지어 ‘악마를 변호한다’며 집단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불충분한 증거와 불확실한 증언으로 혐의가 모호한 상황에서 피고인을 사형시켜도 되는지를 놓고 변호사와 검사가 재판정에서 벌이는 설전은 명장면으로 꼽힌다.

드라마 밖 우리 사회도 최근 분노에 빠져 있는 듯하다. 가해자에 대한 사적 제재라며 신상을 무단으로 공개하는 등 마녀사냥이 심심찮게 목격된다. 똥개 한 마리가 하수구에 빠지면 모두 모여 들여 침을 뱉고 발길질하는 식이다.

특히 유명한 사건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 권리가 강조되면서 많은 비난이 쏟아진다. 신상공개위원회를 거치지 않아도 각종 웹사이트나 유튜버에 의해 직장, 거주지, 가족 관계 등 개인 정보들이 밝혀진다.

이 과정에서 선량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일은 부지기수다. 유‧무죄를 떠나 신상공개와 돌팔매질, 비난을 업보라고 주장하며 합리화하는 세태 속에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 역시 높아지고 있다.

변호사도 비판 대상에서 자유롭지 않다. 가해자를 변호할 경우 ‘악마를 변호하는, 돈에 양심을 판 악마’ 취급을 당하며 사무실에 항의 전화가 쏟아진다. 같이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사건과 관련 없는 소속 변호사들이 다른 사건의 사임 압박을 받는 경우도 많다.

의뢰인을 대신해 변호하고자 나선 인터뷰에서 “잘못을 인정하지만, 잘못 이상의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며 적용 죄명에 대한 법리 검토를 요구했다가 빗발친 항의로 사임하게 된 변호사도 많았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간혹 범죄자의 낮은 형량이 재판장의 선처라고 생각하며 사적 제재를 합리화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모든 죗값을 형벌로 판단할 수 없고, 형벌마저도 응보적 관점에서만 판단돼야 하는 것도 아니다.

위에 언급한 드라마에서 검사는 “법은 결코 만능하지 않고, 그 불완전성을 보완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 죄를 짓는 것도 인간, 심판하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에 법이라는 무미건조한 것에 피를 통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변호사는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민의가 가장 위험하며, 판결을 내리는 건 결코 국민 설문조사 따위가 아니다. 재판이 민의를 응집하기 위한 국민적 이벤트에 불과하다면 재판 같은 권위 있는 절차도, 변호사도 필요 없다”고 반박한다.

이보라 변호사는 “판사가 민의를 온전히 배제한 판단을 할 수는 없겠지만, 헌법과 법률에 의한 법관의 양심에 따른 판단으로 우리의 법치주의가 국민과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얼마 전 화재가 된 한 사건에서 재판부는 “이미 대중적 관심을 받으며 사회적 평가가 내려진 듯해 신중한 양형이 필요했다”고 판시했다. 확실히 과열된 민의에 의한 우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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