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고형암 정밀의료사업으로 질환 극복 나선다”

입력 2024-02-02 18:08 수정 2024-02-0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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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 일환…제약업계·정부 등 협업

▲피지훈 서울대 의과대학 신경외과 교수가 ’소아고형암 정밀의료사업(STREAM program)’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노상우 기자 nswreal@)
▲피지훈 서울대 의과대학 신경외과 교수가 ’소아고형암 정밀의료사업(STREAM program)’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노상우 기자 nswreal@)

“소아고형암은 진단도, 치료도 쉽지 않습니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 회장의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 연구로 아이들이 빠르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최은화 서울대어린이병원 원장)

2일 의학계에 따르면 소아암은 진단과 치료가 어렵고, 치료제 임상시험도 제한적이다. 치료 환경 구축에 많은 투자비용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소아암·희귀질환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2021년 5월 출범한 소아암·희귀질환사업단(사업단)이 정밀의료사업을 기반으로 질환 극복에 나섰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의 기부금 3000억 원을 재원으로 출범한 사업단은 전국 소아암 환자의 유전체 분석을 통해 유전자 변이를 찾아내 정확한 진단과 맞춤치료를 구현하는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한다.

소아암·희귀질환사업단 이날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제1회 소아고형암 정밀의료사업(STREAM program) 심포지엄’을 열고 3년간 추진 현황과 성과를 공유했다. 사업단은 출범 후 진단 3984건, 치료 2336건의 성과를 달성해 우리나라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에 앞장서고 있다.

사업단에서 소아고형암 분야를 총괄하는 피지훈 서울대의과대학 신경외과 교수는 이날 “소아고형암은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어 환자가 얼마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1년에 새로 발생하는 소아고형암 환자는 적게 잡으면 300명, 넓게 잡으면 500~6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면서 “성인에게 허가됐어도 소아에게 허가가 나오지 않은 약도 많고, 소아에게 적용 가능한 제형이 만들어지지 않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진단도, 치료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피 교수는 검사부터 진단·치료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병원에서 그치지 않고 민간 제약사와 정부까지 확대하는 ‘소아고형암 정밀의료사업(STREAM program)’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에임드바이오와 지놈인사이트 등 국내 바이오기업이 참여하고 있으며, 로슈 등 글로벌 제약기업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병리 진단이 가능한 의료진의 수가 적고 소아 마취 전문가도 드물다. 소아고형암 환자를 치료할 병원도 수도권에 편중돼 있고, 병원마다 연구조직이 별도로 구성돼 있다. 최근 유전체 분석 도입으로 맞춤형 치료가 가능해졌지만, 표준화돼 있지 않다. 특히 비용도 상당히 높은 편으로 소아고형암 치료나 진단 분야 발전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 해외에선 소아암 환자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 활성화돼있다. 호주에서는 ‘제로 차일드후드 캔서 프로그램(ZERO childhood cancer program)’을 통해 암 유형 등과 관계없이 정밀의학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독일에서는 ‘인폼(INFORM) 프로그램’을 통해 특히 재발 암 치료를 돕고 있으며, 소아암 치료의 접근성을 높였다.

피 교수는 “여러 바이오벤처, 제약기업과 협업하며 모든 암을 포괄해 진단과 치료 역량을 강화하겠다”라면서 “고 이건희 회장의 기부금이 없었다면 절대 할 수 없었다. 어디 내놔도 뒤처지지 않을 프로그램이다. 소아고형암 치료에 도움 되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국내 전체 암 환자는 2019년 기준 24만3718명으로, 이중 소아암 환자는 1206명에 불과하다. 최근 출산율이 급감하면서 전체 암 중 소아암이 차지하는 비중은 1%에서 0.5% 수준으로 내려가고 있다. 다만 국내 소아암 치료 성적이 향상됐지만, 초기 합병증과 2차 암 등 후기 합병증을 고려해 관련 연구가 더 활성화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최정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국내 소아암 치료 성적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80% 이상의 소아암 환자를 살리고 있다”라면서도 “치료하는 동안에도 성장하는 것을 고려하고 남은 수명이 많으니 초기합병증도 고려해야 한다. 치료 성적은 향상했지만 20%는 암으로 사망하고, 완치된 생존자 중 40%는 2차 암 등 후기 합병증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소아암은 환자 수가 적고, 많은 투자 비용이 들어가야 하다 보니 정부의 지원사업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제약사도 이윤을 기대하기 어렵고, 소아 대상 임상시험도 제한적이라 사업 자체를 진행하지 않는 기업이 많다.

최 교수는 소아암 임상시험 플랫폼을 구축하고 소아혈액종양 전문가, 국가, 제약회사가 협력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최 교수는 “스폰서 주도 임상(SIT)의 경우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주로 이뤄지는데 한국은 선정기준에 맞지 않아 참여가 제한되는 경우도 많다. 연구자 주도 임상(IIT)도 서울과 지방간 정보 불균형, 약제 지원 문제 등으로 연구 활성화에 어려움 겪고 있다”며 “소아암 연구자 주도 다기관 임상시험을 위한 지원 체계를 마련해 소아암 환자의 치료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다.

제약업계는 허가·보험 약가 심사 지연 등이 소아암 치료제 도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연재 레코르다티코리아 대표는 “심의인력 부족, 잦은 변화, 심의 검토의 전문성 부족 등의 이유로 허가·보험 약가 심사가 지연된다”며 “2011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유럽·일본에서 허가된 신약은 365개인데 반해 한국은 128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소아항암제의 경우 임상시험 대상 환자 수가 적어 통계 수치를 낼 수 없어서 허가 급여에 어려움이 있다. 또한, 한국은 상대적으로 낮은 약가, 낮은 출생률로 인한 임상 진행 회피 등으로 신약 도입이 늦어진다.

이 대표는 “미국에선 성인 암 신약을 개발할 때 소아용 신약도 동시에 개발하도록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일본도 2023년 3월부터 미국 법·제도를 참조해 의견을 제출했다”라면서 “국내에서는 동정적 사용, 자가 치료를 위한 수입, 우선 접근 제도 등 환자 지원프로그램 등을 활성화해 소아암·희귀질환 치료제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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