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을 확대해도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늘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정부의 의료 정책을 전면 비판하고 나섰다. 의사들은 정부가 응급실 과밀화와 의료 취약지 문제를 방치하고, 의료 소송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소송에 대한 부담을 피해 응급실을 떠나고 있다.
본지는 최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이형민(한림대평촌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을 만나 응급의학과의 위기 상황과 해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응급의학과는 환자와의 의료소송 부담이 높은 ‘기피과’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법원은 응급실에서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한 응급의학과 전공의에게 업무상과실치상죄를 적용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최종 선고했다. 응급실에서 기관삽관 및 심폐소생술을 받은 환자가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반혼수 상태에 빠진 사건에서는 학교법인이 환자에게 위자료 등 5억 7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대해 이형민 회장은 전문의가 시행한 응급조치는 사법적으로 잘잘못을 판단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문적인 지식에 근거해 짧은 시간 내 최선의 판단을 하는 것이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하는 일”이라며 “실제 응급 상황은 교과서에 나오는 이론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비전문가는 응급실 현장을 잘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응급실은 몰려드는 환자를 소화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이 회장의 분석이다. 국회는 2021년 응급의료기관의 장이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 수용 능력이 없다고 통보하지 못하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했다.
이에 대해 이형민 회장은 “개정 법률이 환자 이송 시간은 단축해도, 환자 사망률은 증가시킬 것”이라며 “최근 강원도에서는 노인 환자가 응급실 도착 후 장시간 대기하다가 7시간여 만에 대기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는 사고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해당 응급실에는 대기 환자가 20여 명 있었다”라며 “응급실에 환자를 밀어 넣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법률 개정 이후 응급실 의료진들이 감당해야 하는 업무 강도와 소송 위험은 커졌다. 이에 병원에서 사직하고 응급실을 떠나 개원하는 전문의들이 증가하고 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현재 응급의학과 전문의들 가운데 개원의 비율이 10%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회장은 “알고 지내던 응급의학과 동료 중 개원한 사례가 50명이 넘는다”라며 “전문적으로 수련 받은 핵심 전력들이 다 개원가로 빠져나가 사회적 손실이 매우 크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응급실에서 소송에 휘말려 의사 면허가 취소되거나, 수억 원을 보상하게 된다면 더는 직업을 영위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전문의들은 생존을 위해 응급실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파괴했다고 이 회장은 지적했다. 의료 행위에 법률이 과도하게 개입해 환자와 의사의 법정 다툼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소송이 흔해지면서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돈으로 맺어진 거래관계로 전락했다”라며 “돈을 낸 만큼 치료 결과가 좋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한 상황”이라며 “환자와 의사가 다투는 동안 정부는 응급의료 체계 붕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 회장은 앞으로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양성하기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4년도 상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응급의학과는 191명 모집에 152명이 지원해 지원율 79.6%를 기록했다. 2021년도 101.8%, 2022년도 98.8%, 지난해 85.2% 등 지속해서 하락해 올해 80% 선이 무너졌다.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이 회장은 “의대 정원을 확대하고, 공공 의대를 설립해도 늘어난 인원이 응급의학과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며 “문제는 의사 수가 아니라 시스템에 있다”라고 했다.
특히 이 회장은 “최종치료가 가능한 응급실을 전국에 충분히 마련하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적합한 의료기관으로 이송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라며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탁상공론과 땜질식 법률 개정으로는 응급의료체계 붕괴를 막기 어렵다”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