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어느 날, 산업자원부 장관과 차관이 파리의 한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장관은 불가리아로 향하고 있었고, 차관은 루마니아와 헝가리를 돌아 귀국하는 길이었다. 엑스포 개최지가 결정될 제142차 BIE(세계박람회기구) 총회가 두 달 뒤였다. 짧은 대화를 나눴을까, 차관을 수행하던 젊은 과장에게 장관은 조심히 들어가라 인사하고는 이내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갔다. 박람회를 유치하기 위해 정신없이 내달리던 날들의 작은 삽화다. 2012 여수 엑스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지난 달 29일 새벽, 사우디의 환호가 TV 화면을 채웠다. 벽은 높았고, 2030년 엑스포의 열기는 리야드로 건너갔다. 올해 초 엑스포 유치 정부대표단의 일원으로 스리랑카와 몰디브를 방문했던 기억이 새삼 아쉬우나, 그뿐이다. 끊어지지 않아야 길이라고 언젠가 이 지면에 적었다. 새로 출발하면 된다.
1981년 바덴바덴의 “쎄울, 코레아!”에 이르는 데에는 한강의 기적을 세계에 각인시킬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평창올림픽은 세 번의 도전 끝에, 월드컵은 동반 개최로 귀결된 치열한 경합 이후에야 겨우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내놓을 거라고는 여덟 칸 기와집이 전부였던 1893 시카고 엑스포의 헐벗은 조선, 지금은 고개만 잠깐 들어도 눈부시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중요한 건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전략의 한계를 분석하고, 모든 경험에서 노하우를 집적해 내야 한다. 끊임없는 도전만이 좌절을 지운다. 시도하지 않는 것이 실패다.
국민의 염원을 짊어지고 트랩에 오르던 기업인들의 뒷모습을 떠올린다. 88올림픽의 현대, 평창올림픽의 삼성, 부산엑스포의 SK 등 전면에 나선 기업들은 물론, 세계에 명함을 내밀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끌어올리는 데 헌신한 수많은 중견, 중소기업의 역사를 되새긴다. 통 크게 베팅할 게 없는 상황에서 경제협력의 약속과 실천은 작지만 단단한 무기였고, 실질적인 비즈니스를 통해 쌓아온 기업들의 신뢰는 열린 소통의 기반을 이뤘을 터다. 기업들은 더 성장했다. 잠깐 멈추면 어떤가, 부산 엑스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훌훌 털고, 어느덧 연말이다. 10대 뉴스가 쏟아질 텐데, 정부가 출범한 지난해에는 용산시대 개막을 시작으로 이태원 참사, K컬쳐의 약진, 국민 절반의 코로나 확진 등이 꼽혔다. 다이내믹 코리아답게 숨 가빴던 만큼, 올해가 어떤 뉴스들로 갈무리될지 지켜보고, 돌아볼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해가 바뀐 것보다 큰 전기였던 2022년 8월 이후의 10대 뉴스가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취임, 수많은 중견기업인과의 만남, 최초로 대통령이 참석한 제8회 중견기업인의 날 기념식, 중견기업인들이 가득 운집한 첫 송년회, 단단해져가는 경제6단체로의 위상 변화와 이를 증명하듯 250명이 몰려든 신입직원 채용, 최초의 중견기업 도약지원펀드 결성 등이다. 중견기업특별법이 10년 한시법의 꼬리표를 떼어내고 상시법으로 전환된, 국회 본회의장이 찬성을 뜻하는 초록빛으로 뒤덮이던 순간은 결코 잊을 수 없다. 물론 논현로 필진으로 참여하게 된 것도 작지만 귀한 뉴스다.
‘미리 보는’ 중견기업계의 2024년 10대 뉴스는 어떨까. 상속·증여세율 OECD 평균 수준 인하, 환경·노동·입지·공정거래 킬러규제 해소, 노사관계 유연성 회복,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중견기업 전문 금융기관으로의 변신, 기업 중심 R&D 체계 개편, 기업가정신 선양 문화 확산, 중견기업법 전면 개정, 사상 최대 중견기업 투자·고용 실적 달성, 중견기업연합회 신사옥 착공과 회원사 천 개 돌파 등은 기다려지는 소식이자 목전의 과제다.
30년 공직을 마무리하고 경제단체 상근부회장으로 인생 2막의 첫 장을 펼치겠다는 말로 지난 1월 논현로에 올라섰다. 중견기업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쓰고, 되새기면서 오히려 큰 배움을 얻은 시간이었다. 뜻깊은 기회를 제공해 준 이투데이와 졸필을 응원해 주신 많은 분께 감사를 전한다.
눈 밝은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필자의 10대 뉴스에 하나가 빠졌다. 지난해 10월 10일 쌍무지개 뜬 날의 생애 첫 홀인원이다. 동반자들도 3년 동안 운이 좋다 하니, 함께 해 준 독자들과 모든 중견기업인에게도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