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과자 해고못해 외국계 ‘의아’
제소기간 등 불합리규정 손봐야
한 외국계 기업은 한국에서의 사업을 철수하기로 하는 본사 결정에 따라 한국 법인 근로자 전원을 해고하기로 했다. 한국 법인 입장에서는 폐업으로 인한 해고여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근로자들이 직장을 잃게 된 사업장의 분위기가 좋을 리 없었다.
노조가 공장을 점거하고, 회사 정리를 위한 자재 반출까지 막으면서 폐업은 진행이 어렵게 됐다. 여러모로 불법이었지만 당시 경찰이나 정부기관의 협조를 기대할 수는 없었기에 결국 회사는 협상에 나섰다(외국 본사에서는 이 부분도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결국 회사가 상당한 수준의 합의금을 지급하고서 나서야 노조가 농성을 풀어 폐업 절차를 완료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미 노사 모두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였다. 그런데 최종 폐업 직전에 본사 출신 외국인 대표이사가 해고된 근로자들을 전부 불러 작별 파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나라 분위기상으로는 그러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한 금융사 최고경영책임자(CEO)는 미국에서 오래 공부하고 귀국했는데, 한국 노동법상으로는 저성과를 이유로 해고가 쉽지 않다는 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법리적인 가능성과 무관하게 일단 해고를 실시했다가 패소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어떤 사건에서도 회사가 이기기 어려워졌다.
가령 이 회사에서는 한 달 영업실적(매출)이 6000원에 불과한 영업사원을 저성과자 업무향상 프로그램에 발령했다. 법원에선 이러한 인사발령까지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 정도는 일반적인 회사라면 충분히 해볼 만한 사건이었으나, 반복되는 패소 끝에 법원도 회사의 주장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만이 해고가 어려운 나라는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하는 한국의 고용보호지수에 따르면 2019년 한국 정규직 근로자의 해고 난이도는 6점 만점에 2.37로 미국(1.3), 호주(1.66), 영국(1.74), 독일(2.22)보다는 해고가 어렵지만 체코(3.02), 포르투갈(2.85), 이탈리아(2.72)보다는 해고가 쉽다.
다만 OECD 지표는 각국 정부에서 보내주는 답변에 따라 작성되다 보니, 회원국 정부의 주관적 평가나 의도의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나라에서는 유능한 관료들이 실제보다 해고가 ‘쉬워 보이도록’ 답변을 잘 정리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해고의 난이도를 평가하는 데 있어 해고를 다투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소기간은 중요한 평가기준이다. 미국은 주별로 크게 다르고, 영국은 3개월, 독일은 3주 등으로 나라마다 큰 차이가 있다. 한국과 일본은 제소기간에 제한이 없다. 다만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지난 경우 법원이 소를 각하할 수 있다.
OECD에서 공개한 과거 평가결과를 보면 일본은 제소기간 부문이 6점으로 해고가 가장 어려운 경우로 평가됐다. 그러나 한국은 2점으로 제소기간이 3개월인 영국과 동일하게 평가됐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한국에서는 법원 제소와 별도로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할 수 있는데, 이는 근로자를 위한 추가적인 구제수단이다. 그 신청기간은 3개월로 제한이 있다. 한국 정부는 이 점에 착안해 한국에서 해고 관련 소송의 제소기간이 “3개월”이라고 OECD에 답변했다. 뒤에 괄호를 달아 법원에 바로 소송을 제기하면 특별한 제한이 없다고 부연했지만, 하나의 숫자를 정해 통계적으로 처리하는 OECD 지표의 특성상 한국의 답변은 “3개월”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해고가 반드시 가장 어려운 것은 아니나, 제소기간 등 몇 가지 면에서는 유난히 해고가 어려운 나라인 것은 맞다. 해고 제도는 그 나라의 상황과 전통을 반영하기 때문에 굳이 외국의 제도를 따라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제소기간을 무제한으로 할 필요가 있을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