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지금] 한일관계, ‘일본의 일관된 입장’이란 무엇인가?

입력 2022-09-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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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유지(세종대 대우교수)

지식인들이 한일관계를 논의하는 제10차 한일 미래대화가 9월 3일 도쿄 시내에서 열렸다. 이 심포지엄에 박진 외교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메시지를 보냈다.

박진 장관은 영상 메시지에서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다. 그동안 경색되고 방치돼 온 양국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양국 간 전략적 협력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일본 측에 당부했다. 그는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바람직한 현안 해결 방안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계속해 온 결과 한일관계 개선의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문제 등을 염두에 두고 상호 신뢰를 회복해 현안의 조속한 해결에 임하겠다고도 말했다. 하야시 외상은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 ‘일본의 일관된 입장’에 따라 한국 측과 긴밀히 소통해 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 심포지엄에 앞서 박진 장관은 2일 강제징용 관련 소송에서 승소한 90대 원고 2명의 자택을 방문해 “외교부 장관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박 장관과 원고들이 직접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일관계 개선을 중시하는 윤석열 정권이 배상 집행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원고 측이 반발하는 가운데 당사자에게 성의를 다하는 모습을 내외에 보여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편 패소하여 한국에서 압류된 자산의 매각 명령에 불복한 일본 기업 측의 재항고를 심리하는 대법관이 2일 퇴관식을 치렀다. 대법관의 퇴관까지 최종 판단이 내려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심리를 맡은 책임대법관의 퇴관으로 한일 양국정부가 우려하는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에 대한 최종 판단은 당분간 연기될 전망이다.

원고 이춘식 씨 자택을 방문한 박진 장관은 “강제징용 문제는 살아있는 역사라고 생각한다”며 “문제가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판결이라는) 결과만 받았다. 살아 있는 동안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박 장관에게 말했다.

외교부는 7월 초 민관공동협의회를 구성해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를 피하는 방식의 해결책을 모색해 왔고 대법원에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설명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원고 측 지원단체는 한국 정부가 일본 기업의 손을 들어주고 사실상 대법원에 판단을 유보할 것을 요청했다고 비판했다. 지원단체 측은 외교부는 의견서 제출을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9월 5일 4차 협의회가 열렸지만, 원고 측은 참석을 거부하는 등 정부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상태이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 측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는 방안이 추진된다면 열쇠가 되는 점은 일본 측이 말하는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과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가 모순 없이 양립될 것 인지일 것이다.

여기서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이에 대한 답은 일본 국회 대정부 질문에 대한 정부 답변을 보면 분명하다. 일본 국회 회의록을 분석하면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란 ‘한일 간의 청구권 문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법적으로는 모두 마무리되었고 혹시 문제가 생기면 인도적인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는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이 그 좋은 사례인데 일본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법적 문제는 1965년 다 끝났으니 인도상의 문제로서만 접근한다’는 입장을 끝까지 관철해 피해자들이 원하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강제징용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사과’를 한다고 해도 그 사과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차원의 사죄, 즉 일본 측이 과거에 법적으로도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사과가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데 대해 사과한다’라는 정도의 말로 법적 책임을 교묘히 비켜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직접적인 가해 당사자는 기업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모호하게 사과를 하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다. 사과한다면 일본 기업들이 직접 피해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일본 정부가 사과한다면 ‘모두 합법이었지만 고통을 안겨줘서 미안했다’는 의미의 말이 될 수 있다. 그런 다음 배상을 인정하지 않고 보상은 1965년 모두 끝났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어 인도적인 ‘사과’만 하고 마무리할 가능성이 있다. ‘배상금’은 한국 정부가 일본 기업을 대신해서 ‘대위변제’하고 그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막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피해자들이 그것으로 납득하느냐에 달려 있다. 피해자 측은 이런 한국 정부의 자세에 반발하고 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때와 똑같은 외교적 참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일본 측의 ‘일관된 입장’이라는 말을 한국 정부가 모두 수용한다면 한국 측이 원하는 해결책이 될 리가 없다. 왜냐하면, 한국 측 입장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한국 측의 일관된 입장’이라는 말을 내세워 일본 측과 협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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