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중앙정보부를 모태로 탄생한 국정원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본연의 임무에서 일탈하거나 불법 활동으로 옥고를 치른 원장도 많다. 국정 전반에 걸쳐 무소불위로 관여하거나 막강한 권력기관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글로벌 시대의 국정원은 새로운 역할을 해야 한다.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 요청 자료는 “신흥안보, 사이버안보 등 새로운 분야에서 정보 역량을 배가하는 데 적임자”라고 하고 있다. 대북업무, 테러 대비, 사이버전 대비 등 국가안보 위기는 나날이 증대된다. 정치사찰 금지나 정치적 중립성 확립은 더 강조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국정원장이 확고한 국가관을 가지고 시대적 과제를 잘 엮어내야 한다. 다양한 국제적 이슈에 밝아야 하고, 외국 정보기관과의 네트워크나 유기적인 정보협력 능력도 갖춰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규현 국정원장 후보자는 매우 적임자이다. “확고한 국가관과 탁월한 업무 능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외교·안보 주요 분야를 두루 경험했다”고 하는 인사청문 요청서가 잘 말해 준다. 필자는 과거 2003년부터 4년간 미국 워싱턴 D.C. 소재 한국 대사관에서 농무관으로 근무했다. 당시 정무 참사관이던 김규현 후보자를 가까이 보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 필자가 거주하던 집도 미국 중앙정보기관 (CIA) 바로 근처라 정보기관 역할과 기능도 관심 있게 지켜봤다.
첫째, 김규현 후보자는 외교나 안보, 국제 통상, 남북통일, 북핵 문제 등에 탁월한 전문성을 가졌다. 글로벌 통상과제나 지역 분쟁이슈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김규현 참사관에게 물어봐라”고 할 정도로 각 분야에 걸쳐 풍부한 지식을 가졌다. 정보 역량을 종합하고 분석해야 하는 국정원 수장에게 필요한 능력을 갖췄다고 본다. 다양성과 전문성을 토대로 펼치는 그의 탄탄한 논리는 빈틈이 없었다. 양비론이나 어정쩡한 중립적 입장을 취하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게 제시해 준다.
둘째, 김규현 후보자는 시대 상황에 알맞은 국정 어젠다를 제대로 발굴하고 제시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이고 첨단 과학과 기술이 나날이 융복합하는 시대이다. 국제 흐름을 잘 파악하고 세계 속에 우리나라가 가진 위상을 잘 알고 역할을 할 수 있는 감각과 안목을 가졌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필자는 김규현 외교수석에게 대통령 외교 어젠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식량 증산 등 한국 농업의 성공 스토리를 중점 추진할 것을 건의했다. 국제 농업협력, 한식 세계화, 식품 수출 등 여러 분야에서 성과를 나타냈다. ‘한식 세계화’ 어젠다는 반짝 빛을 보다가 흐지부지되었다. 시간이 짧았고 체계적인 뒷받침이 되지 않았으나 지금도 유효한 ‘대통령 어젠다’이다. 특히 대통령 부인이 해외 순방 시 역점 추진해야 할 과제가 ‘한식 세계화’이다. 유적지나 문화 자원 탐방에서 탈피하여 국격을 높일 수 있는 ‘영부인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그 중심에 한국 식문화와 한국 음식이 자리 잡고 있다.
셋째, 김규현 후보자는 매우 다양한 경력을 가졌고 인간적인 사람이다. 치과대학에 다니면서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교관이 된 특이한 경력 소유자이다. 다양한 전공을 하면서 자신과 다른 전공, 다른 부처, 다른 생각과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깊다. 넉넉함과 관용이 그의 특징일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외교관들이 타 부처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다. 부처 간 소관이 불분명하고, 유사·중복 업무도 많아 갈등 소지가 많다. 국방부 국제협력관으로 한미 간 전시작전 통제권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나간 데서도 알 수 있다. 외교관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기 쉬운 엘리트 의식이나 선민의식도 없다.
윤석열 정부 국정원에 기대가 크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를 벤치마킹하자. 국장의 평균 임기도 5년 6개월이라 정치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다. 모사드의 모토는 구약성서 잠언 11장 14절에 나와 있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확고한 국가관, 시대 상황과 지략을 바탕으로 김규현 국정원이 새로운 소명을 수행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