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부터 경실련에서 활동하며 분양원가 공개와 분양가 상한제(주택 공급 원가에서 일정 범위 이상 분양가를 못 올리게 하는 제도) 시행, 공직자 투기 근절,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공시가격과 시세 격차를 줄이는 것) 등 굵직한 문제들을 제기해 왔다. 김대중 정부부터 시작해 노무현ㆍ이명박ㆍ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경실련과 김 국장의 쓴소리는 정권 성향을 가리지 않는다. 그 지향은 단 하나. 부동산 투기 근절과 서민 주거 안정이다.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경실련 사무실에서 김 국장과 만나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고언(苦言)을 들어봤다.
김 국장을 만나기 이틀 전, 정부는 여섯 번째 3기 신도시로 경기 광명ㆍ시흥지구를 지정했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82만 가구 규모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 공급 획기적 확대 방안(2ㆍ4 대책)'의 첫 작품이다. 김 국장에게 신규 택지 공급 실효성을 물었다.
김 국장은 "정부가 2025년까지 확보하겠다는 82만 가구는 지구 지정 기준이다"며 "실제적인 공급 효과는 없고 이전 대책과 뭐가 다른지도 명확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는 "여러 가지 사회 변화 측면에서 봤을 때 이번 대책이 정말 필요한 공급이냐는 의문도 해소되지 않았다"고도 덧붙였다.
말이 나온 김에 김 국장에게 2ㆍ4 대책에 관한 총평도 부탁했다. 김 국장은 "정부가 내놓은 주택 공급 대책이 이번 83만 호 대책만 있는 게 아니라 전에 127만 호 공급 계획도 내놨고 주거복지로드맵 등도 계속 던졌는데 모두 지지부진한 상태"라며 "가장 큰 3기 신도시도 완벽하지 않은 상황인데 그 와는 다른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 국장은 공공자가주택 쪽으로 쓴소리 화살을 옮겼다. 공공자가주택은 개인에게 주택 소유권은 분양하되 주택을 처분할 때는 그 시세 차익을 공공이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주택이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학자 시절부터 주장하던 주택 유형이다. 정부는 2ㆍ4 대책에서도 공공 직접시행 재건축ㆍ재개발과 저층 주거지ㆍ역세권ㆍ준공업지역 고밀 개발로 공급되는 주택 중 20~30%를 공공자가주택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김 국장은 "정말 중요한 건 분양가 책정이고, 공공 보유 주택을 몇 채 확보하겠다는 것인데 그런 게 없다"며 "들여다 보면 원가와 상관없는 분양가 책정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가 공공 주도 개발 유인책으로 제시한 용적률 완화에도 날을 세웠다. 김 국장은 "정부는 용적률 규제를 완화해 늘어난 주택 수를 기준으로 개발이익을 환수하겠다고 하는데 용적률 상한이 아니라 현행 용적률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용적률 규제를 완화해 저층 아파트를 고층으로 재건축한다면 그 개발이익을 주민들 몫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게 김 국장 논지다.
그는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한 후 문재인 후보가 도시재생 뉴딜을 공약하면서 강북 아파트값이 올랐는데 임대사업자 활성화 제도가 이를 더 부추겼다"며 "다주택자에게 말로는 '파시라'고 해놓고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종합부동산세ㆍ재산세 면제 또는 감면 등 어마한 지원을 했다. 2017년 임대사업자 활성화 제도가 나온 후 2018년 집값이 엄청 뛰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2019년 분양가 상한제를 한다고 해놓고 유예 발언을 두 번 하니 시장에선 '정부 속내는 집값 잡기 싫구나'라는 신호로 보고 가격이 또 올랐다"며 "그 사이 또 공급 확대ㆍ개발 정책을 내놓으면서 가격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걸었는데 이전 정부보다 못하고 있다"는 김 국장은 이명박 정부의 저렴한 주택 공급을 높이 평가했다. 주변 시세보다 훨씬 싼 주택을 공급해 집값 안정에 기여했다는 점에서다. 그는 "분양가를 비싸게 책정하면 집값은 떨어지지 않는다"며 "이명박 정부 시절 마곡ㆍ항동ㆍ세곡지구 등에 3.3㎡당 500만~900만 원짜리 저렴 주택을 꾸준히 공급했다. 반값 토지임대부 주택(건물만 분양하고 토지 소유권은 공공이 갖는 주택) 등으로 서민이 저렴하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서 집값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획기적으로 저렴한 주택이 꾸준히 분양시장에 나와야 집값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게 김 국장 지론이다.
김 국장과 경실련이 그간 분양가 상한제 확대를 주장해 온 것도 이런 소신에서다. 경실련은 집값을 잡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으로 현재 공공 택지와 수도권 일부 민간 택지에만 적용되는 분양가 상한제를 전국에서 전면 실시하고, 분양가 상한선 책정 근거가 되는 분양 원가 책정도 투명화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해 왔다.
다만 일각에선 공시가격 현실화 때문에 분양가 상한제가 제힘을 못 쓰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부가 땅값을 평가하는 기준인 공시가격을 시세에 맞춰 올리면서 아파트 건설 택지비가 올라가고 분양가 상한선도 높아진다는 논리다. 다음 달 분양을 앞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에선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됐음에도 3.3㎡당 5668만 원에 분양가가 산정됐다. 지금까지 공급된 아파트 중 가장 비싼 분양가다.
김 국장은 이 같은 비판을 "기계적 해석"이라고 맞받았다. 그는 "매년 법정 감정가를 공시가격으로 발표하는데도 서초구에서 별도 감정평가액을 산정하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이번에도 공시지가대로 택지비를 적용했다면 원베일리도 3.3㎡당 3000만 원에 분양할 수 있었다"고 반박했다.
김 국장은 정부의 임대주택 정책에도 쓴소리를 냈다. 김국장과 경실련은 인터뷰 전날에도 문재인 정부 들어서 공급된 임대주택 대부분이 매입 임대나 재임대, 분양 전환형 주택으로 주거 약자의 장기적 주거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김 국장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SH(서울주택도시공사)는 수용권이 있기 때문에 공공택지에서 저렴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지금 해야할 건 신도시 안에서 건설형 임대주택 단지를 짓는 본연의 역할"이라며 "비싼 민간주택을 구매, 재임대하는 건 효과도 적고 부패가 생길 수 있는 여지도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국장은 "경실련 정신이 실사구시(實事求是ㆍ사실에 입각해 진리를 탐구하는 태도)다. 그간 팩트(사실)를 제시하고 정책 대안을 내놓으며 지금까지 왔다"며 "분양원가 공개를 이끌어내고 고위 공직자 다주택 보유에 대한 엄격한 눈높이를 만들었다는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