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빈곤 보고서①] 생계급여가 유일한 소득… 이마저도 약값으로 다 써

입력 2020-10-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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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과라곤 사람 구경뿐… 오직 바라는 건 자녀 행복

▲박미순(75·가명) 할머니에겐 집 앞에 놓인 플라스틱 간이의자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일과의 전부다. 사진은 박 할머니가 사는 서울 장지동 화훼마을 골목. 윤기쁨 기자 modest12@
▲박미순(75·가명) 할머니에겐 집 앞에 놓인 플라스틱 간이의자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일과의 전부다. 사진은 박 할머니가 사는 서울 장지동 화훼마을 골목. 윤기쁨 기자 modest12@
9월 28일 오후, 이른 추캉스(추석+바캉스)를 떠나는 인파로 김포국제공항이 붐비던 날이었다. 추석 연휴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지만, 박미순(75·가명) 할머니의 표정에는 그늘만 가득했다. 늘 그랬듯 집 앞에 놓인 플라스틱 간이의자에 앉아 멍하니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박 할머니가 남편과 함께 이곳 장지동 화훼마을에 온 지도 20년이 넘었다. 장지동 화훼마을은 1982년 잠실 철거민들이 옮겨온 판자촌이다. 젊을 땐 시장에서 채소를 팔았지만, 종일 쭈그려 지내다 보니 나이가 들어 허리가 안 좋아졌다. 얼마 전엔 허리디스크 수술도 받았다. 안 그래도 없는 살림은 더 팍팍해졌다. 매달 정부에서 받는 생계급여는 대부분 약값으로 나간다. 사람 구경은 박 할머니에게 남은 유일한 취미다. 행복의 의미는 잊은 지 오래다. 건강도 건강이거니와 가까운 휴양지에 가을바람 쐬러 나가려 해도 돈이 없다. 늘 같은 일상이 반복된다.

욕심도 없다. 돈을 가져본 적이 없기에 있어봤자 쓸 줄 모른다. 바라는 게 있다면 지방에 사는 아들의 행복이다. 가난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다. 박 할머니는 “지금이라도 돈이 생긴다면 우리 아들이 원하는 걸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어느새 할머니의 눈가는 촉촉이 젖었다.

우리나라 노인들에게 가난은 흔한 모습이다. 보건복지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8월 기준 생계급여 수급자 3명 중 1명은 박 할머니와 같은 노인(65세 이상)이다. 전체 노인 인구 중 생계급여 수급자 비율은 5.4%로 65세 미만(1.7%)의 3배다. 화훼마을엔 박 할머니처럼 생계급여가 유일한 소득인 노인들이 모여 산다. 대부분 주머니가 넉넉지 않아 집 근처에서 여가를 보낸다.

박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다른 할머니들이 몰렸다.

박 할머니와 동갑내기인 김명자(가명) 할머니는 뇌졸중으로 몸져누운 남편을 수십 년째 간병 중이다. 젊을 땐 아픈 남편을 대신해 보도블록을 깔고, 장사도 했다. 남은 건 없다. 변변한 월셋집 구할 형편도 안 돼 판자촌에서 지낸 지가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그렇다고 보도블록 일을 물려받은 아들에게 손을 벌리기도 어렵다. 김 할머니는 “일과라는 게 없다. 그냥 동네 돌아다니다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라며 “매일 하루가 이렇게 지나간다”고 말했다.

화훼마을 노인들의 삶은 단조롭다. 하루하루 버티는 게 버겁고 고단하다. 꽃놀이, 단풍놀이는 엄두도 못 낸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돈이어서다. 반복되는 삶에서 오는 건 ‘우울’뿐이다.

한국인의 ‘행복도’를 연구하고 있는 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노인들의 행복도에 영향을 미치는 게 건강, 가족과 관계, 친구들과 관계 등이라고 한다면, 돈은 이런 것들을 원활히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전제”라며 “돈이 있어야만 행복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행복도와 연결되는 다른 활동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돈이 필요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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