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내 주식을 사가세요

입력 2020-07-2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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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매수청구권이란?

주주는 회사의 주인이다. 회사의 합병, 분할, 영업의 양도 등 회사 구조 및 운영, 주주가치 등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는 이벤트가 생길 경우, 반드시 주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경영진이 내린 판단이 어떤 주주에게는 오히려 비합리적인 결정에 해당하거나 회사가치를 감소시킬 수 있어서다. 의견 대립까지는 아닐지라도, 단순히 원래의 투자 목적과는 다른 사정이 생기면 주주는 언제든지 투자를 재고할 수도 있다. 따라서 회사는 지배구조상 큰 변화가 생기는 상황에서 이에 반대하는 주주에게 ‘회사에 다시 주식을 되팔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데, 이를 ‘주식매수청구권’이라고 한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상법상 보장된 권리로 소수주주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할 뿐 아니라 경영진 판단에 대해 적절하게 견제할 수 있도록 한다. 원리상 당연하고 합리적이고 법적 이익의 균형을 위해 필요한 제도인 셈이다. 그러나 막상 현실에서 마주치는 사정들이 그리 곱지만은 않다.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권리는 보장됐지만, 회사가 과연 얼마에 사줄 것인지(공정가격), 문제가 있으면 법원을 통한 해결책은 원활한지(주주대표소송), 아니면 오히려 청구권 과잉행사에 의한 부작용(합병 결렬)이 발생하지는 않는지 등이 문제가 됐다.

적법한 합병 절차, 공정한 가치

2016년 4월, 현대그룹은 현대증권에 대한 보유주식 22.56%의 지분을 주당 2만3182원의 가격으로 KB금융지주에 매각했다. 금융지주사가 자회사를 편입하기 위해서는 지분 30% 이상을 의무보유해야 한다(금융지주회사법 제43조의2). 5월 31일, 최대주주가 된 KB금융지주는 지분의 추가 취득을 위해 현대증권의 이사진을 선임했고, 현대증권은 이사회 결의로 자사주 지분 7.06% 전량을 당일 종가인 주당 6410원에 매각했다. 10월 4일, 현대증권은 주주총회를 열어 KB금융지주와 ‘포괄적 주식교환’을 추진했고, 이를 반대하는 주주를 위해서는 주당 6637원에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현대증권의 기존 주주들에게 KB금융지주의 신주를 배정하면서 현대증권을 현재와 같이 지분 100%의 완전 자회사 형태로 완성한다.

재무 이론상 기업의 자산은 자본과 부채의 합이고, 한 기업의 가치(Enterprise Value)는 그 구성항목인 자본(Equity)과 부채(Debt)의 시장가치(Market Value) 합과 같다. ‘주가’는 시장에 의해 기업의 현재 및 예상 가치가 가장 효율적으로 반영된 ‘공정가격’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으며, 법적인 하자도 발견되지 않았다.

가치(Value)와 가격(Price)의 괴리 그리고 ‘경영권’ 프리미엄

그런데 이상하다. 주식의 가격은 기업의 값어치를 주식 수만큼 나눈 값(1/n)으로 동일해야 하는데 가격이 아주 다르다. 회사의 주당 ‘순자산가치’는 1만3955원이었는데, ‘지배주주 주식’은 2만3182원에 매각하고, 약 한 달 후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는 6410원에 매각했기 때문이다. 지배주주의 주식 매각 가격은 일반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인 6637원보다 약 4배 더 높게 나타나 ‘주주평등의 원칙’이 무색해졌다.

원인은 기업가치(Enterprise Value)와 시장가격(Market Value)의 괴리, 그리고 핵심엔 지배주주 주식의 ‘경영권 프리미엄’에 있다. 지배주주의 주식에는 거래 관행 상 주가 외에 회사의 ‘지배권’(Control)이 따라와 회사의 인사권, 운영권, 그리고 대표권에 대한 일종의 ‘권리금’ 성격으로 프리미엄이 붙는 것이다. 한국은 대부분 회사에서 소유와 지배가 분리되지 않고, 이사회의 권한도 막강해 주요 안건이 이사회 내에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자본시장법상 경영권을 폭넓게 보장하고 있는 법현실도 이유일 수 있다. 예컨대,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54조 상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행위의 예로 한국은 ‘이사’의 선임과 해임의 경우로 폭넓게 정의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대표이사’의 선임과 해임, 임원 ‘구성의 중대한 변경’의 경우로 경영 개입의 범위를 좁게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증권법과 증권거래위원회(SEC Rule 13)에서 경영권을 ‘지배(Control)의 변경’을 초래하는 경우로 협소하게 보지만, 한국에서는 이를 ‘경영 전반’으로 넓게 적용하고 있다. 이 경우 주주활동은 공시의무로 인해 위축될 수밖에 없어 한국의 경영권은 상대적으로 덜 간섭받고 더 보장되곤 한다.

법을 바꾸자

주주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분이 ‘법을 바꿔야 한다’고 설파하는 이유가 이러한 법현실과도 관련 있다. 최근 논의되는 일례로 ‘이사의 충실의무’를 들 수 있다.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 규정상 이사는 회사에 대한 의무만 있고, 대법원 판례도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고려했다면 개별 주주의 구체적 경제적 득실을 고려해야 할 의무까지는 없다”라고 판시하고 있어, 이 조항 자체를 ‘회사와 주주를 위하여’로 개정하자는 내용이다.

지배주주 이외 일반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는 훌륭한 주장이다. 하지만 상법상 이사는 회사와 ‘위임’ 계약 관계이다(상법 제382조 2항). 또한, 채권자는 왜 추가하지 않는지, 주주 외에 이사가 충실의무를 수행해야 할 다른 이해관계자들은 없는지 등에 대한 논점도 그대로 남는다. 더구나 단순히 주주자본주의를 넘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급격히 이행하고 있는 경영학계나 자본시장의 거대한 흐름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입법계의 현실론도 간과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들어 놓아도 통과되지 못하고 국회에서 잠들어 있는 법안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현대증권 사례처럼 합병과 주식매수청구권 이슈에서 항상 함께 따라오는 입법론도 있다. 바로 의무공개매수(Tender Offer Bid, TOB)를 부활하자는 주제다. 일정 비율 이상의 회사 지분을 취득할 경우 ‘나머지 지분도 같은 가격’에 의무적으로 공개 매수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1997년도에 구증권거래법에서 도입되었다가 IMF를 겪으며 신속한 구조조정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의무공개매수를 다시 도입할 경우 주주 평등의 원칙이 실현됨과 동시에 인수 비용이 많이 들어 적대적 M&A를 방어하는 효과도 생긴다. 한국의 현실에서 충분히 고려해볼만 하다.

마지막 구제책, 소송이 남았다

현대증권의 딜에 반대한 주주들은 어떻게 됐을까? 그냥 순응하거나 포기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0.76%의 지분에 해당하는 180만여 주의 현대증권 주식을 보유한 소수의 주주들은 강경하게 맞섰다. ‘자사주 헐값 매각’을 이유로 현대증권 이사진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1심, 2심, 대법원에서도 ‘원고적격’을 결여했다는 이유로 각하돼 현대증권이 최종 승소했다. 소송 중 현대증권의 주주로서 지위를 상실하고 KB금융지주의 주주가 되었기에 소송 자격이 없다는 취지였다. 설혹 형식 요건을 충족해 법정에서 내용을 다투었더라도, 국내에서 충실책임의 입증은 피해를 주장하는 ‘원고’가 해야 하므로, 결과는 낙관할 수는 없을 터였다. 재판에서는 종종 상대가 유죄임을, 내가 무죄임을 증거를 통해 밝히는 ‘입증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가 승패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미국은 어떨까

유사한 사례의 경우 미국은 어떨까? 이론적으로 지배구조가 완벽하고 시장이 효율적이면 경영권 프리미엄은 0이 된다. 실제로 2016년 11월에 있었던 삼성전자의 하만인터내셔널 인수합병 사례만 보더라도 합병 프리미엄이 주가와 합병교부금에 반영돼 굳이 의무공개매수를 하지 않더라도 일반 주주도 보호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입법이 따로 필요 없다.

주주대표소송 판결도 비교해 보자. Gaillard v. Natomas 사건(1985)에서 3년 전부터 Natomas사(N사)의 주주였던 Gaillard는 N사가 Diamond사(D사)에 완전 자회사로 합병되는 과정에서 N사 이사와 임원들이 1500만 불의 고액의 퇴직금(Golden Parachute)을 수령 등의 이유로 신인의무(Fiduciary Duty)를 위반했다며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원심법원은 한국의 판결과 같이 N사의 주식은 D사 주식으로 이미 모두 교환된 이후고, Gilliard가 N사의 주주가 아니므로 대표소송을 제기할 자격을 잃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항소법원은 원고주주가 ‘강제적인 주식교환으로 본의 아니게’ 주주의 지위를 상실한 경우에는 소송을 제기할 자격을 박탈해서는 안 된다고 원심판결을 번복했다. Shelton v. Thomson 사건(1989)에서도 합병과정에서 회사의 주주 지위가 타의에 의해 상실된 경우, 주주대표소송의 원고적격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렇듯 주주평등 이슈는 단지 입법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 효율성 문제 등의 총체적인 논의가 필요한 분야다.

주식매수청구권이 합병을 결렬 시키기도

한편, 주식매수청구권으로 인해 회사의 중장기 가치 증대를 위해 필요해 보이는 합병이 무산되는 일도 있다. 2019년에 7월에 진행된 제넥신과 툴젠의 주주총회에서 다루어진 합병 승인의 건이 그러한 경우다. 양사는 면역 항암, 유전자 백신, 유전자 교정 분야의 시너지 창출을 위해 합병이 필요했다. 더구나 항암면역 치료제 관련해서 잘못된 유전자 정보를 자르는 ‘유전자 가위’ 기술은 매우 중요하다. 제넥신은 대규모 합병 건이므로 반대하고 싶은 주주를 위해 6만7325원을 주식매수청구권으로 제시하고 매수대금이 1300억 원을 초과하면 본 합병 계약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당 연구소에서 의안 분석 당시인 7월 15일 기준 제넥신의 주가는 5만9300원이었다. 주총에서 반대해야 이후 주식매수를 청구할 수 있으므로, 주주들은 나중에 청구하지 않더라도 주총에서는 일단 합병안에 반대해 놓는 게 합리적이다. 게다가 주식의 가격이 더 높았기에 반대해서 회사 제시가격을 받은 후 필요하면 주식을 다시 사면 됐다. 결국, 합병이 예상대로 부결되는 모습을 보며 이러한 현실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며 매우 안타까워했던 소회가 아직도 생생하다.

기관투자자들의 단기 성과 압박과 장기보유에 대한 유인이 없는 한국의 현실상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생각된다. 그렇다고 프랑스 상법처럼 보유 기간에 따라 인센티브가 생기는 ‘시간가중의결권’(Time Weighted Voting)을 도입하면 차등의결권 문제로 이어져 문제는 더욱 민감해지고 자칫 주객이 전도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우선 장기적 수익 관점을 가진 펀드가 과감히 찬성할 수 있는 ‘펀드별 불통일 행사 활성화’와 연기금이나 사회책임투자의 경우 ‘장기 성과주의’를 좀 더 장려해 나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과연 주주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에서는 이토록 요원한 것인가? “내 주식을 사가세요”라는 말 속에 정의와 현실, 분노와 체념, 합리성과 시간 등 다양한 물음과 감정이 한꺼번에 얽히며 주식매수청구권이란 용어가 사뭇 복잡미묘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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