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예보] 더빙전설 장삐쭈 “청년 여러분, 로또 되세요”

우리는 왜 인싸가 아닐까? 남들은 다 아는걸 혼자만 모르고 있어서 그렇다. 래퍼 비와이가 "진짜는 모두가 알아보는 법"이라고 외쳤지만, 모두가 대세를 알아보지는 못한다. [대세예보]는 유튜버ㆍ웹툰작가ㆍ웹소설작가 등, 주류로 부상한 새로운 콘텐츠 시장에서 스타가 될 사람들을 예보하는 코너다. 때론 찌질하면서도 때론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그들의 진솔한 모습을 담아 본다.

▲"밋밋한 장삐쭈...나 빨아랏~!☆. 안녕하세요. 더빙 콘텐츠 크리에이터 장삐쭈입니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기 위해 장삐쭈의 오너캐릭터를 합성했다. 얼굴 비공개의 이유는 기사 뒷 부분에 있다. (김정웅 기자 cogito@)

“로또 되시길 바랍니다. 로또 밖에 답이 없어요.”

현 시점 ‘병맛더빙’ 콘텐츠 최고의 슈퍼스타. 27세 청년 장삐쭈. 그가 자신의 주 구독층이자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로또 사세요’였다. 재차 물었지만 그는 답변을 번복하지 않았다.

그는 왜 자신의 구독자들에게 이런 허망한 얘기를 남겼을까? 그 이유는 인터뷰 말미에 밝혀진다.

15일 ‘병맛더빙’의 전설, ‘장삐쭈’를 만났다.

◇‘장삐쭈 병맛더빙’, 그 전설의 시작

광주광역시에서 작은 대추가공상품 사업을 하던 20대 청년 장진수. 2016년 6월경, 그는 사업 홍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음성 녹음 장비를 구매했다. 장비 성능을 테스트해보기 위해 아무 애니메이션이나 하나 골라 ‘병맛’이 폭발하는 더빙 실험작 한 편을 만들어 유머 커뮤니티인 ‘웃긴대학’에 올렸다.

▲장삐쭈의 첫 작품 '분노조절 장애 보노보노'. 연습삼아 해본 더빙이라고 명시돼 있다. 더빙 전설의 시작이다. (출처=유튜브 '장삐쭈' 채널 캡처)

‘분노조절 장애 보노보노’. 병맛더빙 최고의 스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본명을 알리기 부담스러워, 급한 대로 친구가 의미 없이 붙여준 ‘장삐쭈’라는 별명을 닉네임으로 사용했다. 장삐쭈의 첫 작품 ‘분노조절 장애 보노보노’는 원글이 게재된 웃대 뿐 아니라 인벤, 루리웹 등등 국내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중·고교 시절에 보면 꼭 하나씩 있는 개그 캐릭터들 있잖아요. 웃긴 퍼포먼스를 하기보다는 남의 특징이나 허점을 잘 흉내 내는 친구들이요. 제가 전형적인 그런 캐릭터였어요. ‘만일 이 친구, 이 선생님이라면 이 상황에 이렇게 말할 것 같다’라는 짧은 상황극을 정말 잘했거든요. ‘병맛더빙’이라는 콘텐츠는 이런 제 특기에 딱 맞았죠.”

블리자드의 FPS 게임 ‘오버워치’가 부동의 원톱이었던 ‘리그오브레전드’가 지키고 있던 PC방 점유율 1위 자리를 ‘아주 잠시’ 차지했을 때. 장삐쭈는 ‘30년 후 블리자드 본사’라는 영상을 올렸다. 30년 후엔 게임업계가 블리자드 게임에 의해 완전히 장악당하고, 블리자드의 눈을 피해 롤을 즐기는 이들은 탄압받게 될 것이라는 내용의…지금 돌이켜보면 전혀 말도 안 되는 내용의 유머 영상.

▲그 유명한 장삐쭈의 명대사 "빨아랏!"이 등장한 '30년 후 블리자드 본사'. 그의 인지도에 큰 전환점이 된 콘텐츠다. (출처=유튜브 '장삐쭈' 채널 캡처)

2019년 3월 현재 리그오브레전드의 PC방 점유율은 35%, 오버워치는 7%에 불과하다. 롤 유저들이 시공의 폭풍 속으로 빨려들 것이란 영상 속 전망은 크게 빗나갔지만, 아무튼 이 영상은 대히트를 쳤고 장삐쭈의 이름은 더욱 널리 알려졌다.

“‘30년 후 블리자드 본사’를 제작했을 때 즈음부터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유튜브가 지금처럼 흥했을 시절은 아니었습니다. 근데 이때쯤 조회수 1당 1원을 준다는 루머가 돌았어요. 왠지 유튜브에 안 올리면 아까운 돈이 새는 듯한 기분도 들고 해서… 본격적으로 더빙 영상들을 제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하기 시작했어요.”

유튜브의 효과는 뛰어났다! 이후로도 거듭 성장해온 장삐쭈가 세종대왕님이 급식체를 널리 반포한다는 내용의 ‘급식정음’ 영상을 올렸을 때. 크리에이터 장삐쭈는 어느덧 ‘급식체’ 열풍이라는 사회적 현상의 주역이자, 공중파 방송에까지 진출하는 셀럽으로 성장하는 데 이른다. 2019년 3월 현재 유튜브 ‘장삐쭈’ 채널 구독자는 142만. 더빙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는 독보적인 구독자 수다.

▲장삐쭈가 현재까지 제작한 자체 제작 애니메이션 중 가장 애착이 간다는 작품인 단편작 '시비'. 본편의 내용은 학창시절의 경험담에 약간의 'MSG'를 쳤다고한다. (출처=유튜브 '장삐쭈' 채널 캡처)

◇이제는 ‘창작애니메이션 크리에이터’ 장삐쭈로

장삐쭈는 더 이상 병맛더빙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는다. 이제 전속 애니메이터를 두고 창작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완전한 자체 콘텐츠 제작 크리에이터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장삐쭈 유니버스’의 대표작품인 ‘오늘의 안기욱’은 그를 널리 알려지게 만든 일등 공신인 현란한 급식체가 일품이다. ‘오늘의 안기욱’은 tvN의 ‘SNL’, MBC의 ‘뜻밖의Q’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널리 알려진 ‘급식생’ 시리즈의 시즌2 격에 해당한다.

▲장삐쭈 유니버스의 대표작품인 '급식생' 시리즈의 첫 화. (출처=유튜브 '장삐쭈' 채널 캡처)

‘급식정음’, ‘급식생’ 등의 작품에서 보이듯 그는 유독 급식체와 인연이 깊다. 급식체를 쓰는 동생이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에게는 누나 두 명 만이 있다. 급식체는 구글링을 통해 꾸준히 연습한 것이라고.

“어느날 인터넷에서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급식체를 쓰는 아이들이 나오는 짤방을 봤어요. ‘세종머앟 전투력 오지는 각 인정?’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갑자기 ‘세종대왕이 급식체 쓰면 진짜 웃기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급식정음’ 영상을 만들게 됐죠. 하다보니 반응도 좋고, ‘급식체 쓰는 아이들이 나중에 회사생활하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시작하게 된 작품이 ‘급식생’이었어요. 여기서 파생된 시리즈가 ‘오늘의 안기욱’이구요.”

▲왼쪽의 짤방을 보고 떠올린 아이디어 하나가 장삐쭈의 킬링 콘텐츠중 하나인 '급식체'를 일궈내, 마침내 공중파 진출까지 달성하게 만든다. 오른쪽은 MBC 예능 프로그램 '뜻밖의Q'에서 소개된 장삐쭈의 콘텐츠, '급식정음'의 한 장면. (출처=유튜브 '장삐쭈' 채널 캡처 및 온라인 커뮤니티)

급식체 콘텐츠들의 연타석 홈런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됐지만, 장삐쭈 콘텐츠가 급식체에만 특화된 것은 아니다. 장삐쭈 콘텐츠의 진가는 이 세상 인간이 아닌 듯한 '드립력'에 있다. 종의 한계를 초월한 그의 드립 중 몇 구절을 소개해본다.

“혹시 나랑 한 딱가리 하고 싶은 애들 있을까봐 미리 말해둘게. 나로 말할 것 같으면…(중략)… 합기도 쥐띠, 검도 5단, 주짓수 6단, 계란 지단, 이종격투기카페 우수회원, 웃대 정학, 오유 탈퇴….” (병맛더빙 ‘전학생’ 중)

“자, 지금부터 제1회 허언증갤러리 정모를 시작하겠습니다. 자리를 빛내주신 신사, 숙녀, 빡빡이 여러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정모사회를 맡게 된 알렉스 크리스찬 마이클즈 6세 주니어 와퍼입니다.” (병맛더빙 ‘허언증갤러리 정모’ 중)

▲위의 드립이 나온 병맛더빙 콘텐츠 '전학생'(왼쪽)과 '허언증갤러리 정모'(오른쪽). 영상을 직접 보면 더 웃기다. (출처=유튜브 '장삐쭈' 채널 캡처)

아니, 이게 글로 옮기면 좀 덜 웃기는데, 영상으로 보면 10배 정도 더 웃기니 독자들께서는 직접 영상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드립의 신이 장삐쭈에게 드립을 점지해주기라도 하는 것일까? 장삐쭈는 실은 자신이 즉흥 드립의 대가가 아니라, 노력파 타입의 ‘드립 연구가’라고 했다.

“어떤 상황이 있으면 일단 평범하게 주고받는 대사를 만들어요. 예를 들어 과한 행동을 자제하는 상황이라면 우선 ‘오바하지마라’는 대사로. 여기서 나아가면 ‘오바싸지마라’는 식으로 하나씩 살을 붙이다가, ‘짜다 만 강아지 항문낭같은 놈아, 오바 좀 싸지마’라는 식으로 발전하는거죠. 평범한 대사도 생소한 단어를 접목하면 길고 재밌는 드립이 됩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보통 ‘강아지 항문낭 같은 놈’이라던지, ‘벽을 무슨 만수르 이빨로 만든 것도 아니고, 350만 원이 말이 돼요?’ 같은 멘트를 떠올리는 건 범상치 않은 일인데… 타고난 재능에 노력까지 더해진 인물이라고 해두는 편이 맞겠다.

사실 장삐쭈는 노력이 어쩌고 하는 건 다 언론 보도용 멘트일 뿐이고, 약을 빨았기 때문에 이런 드립이 가능하다고 기자에게 귀띔해줬다. 주기적으로 복용하는 ‘아락실’이 드립력의 비결이라고….

▲"드립은 어차피 약빨입니다. '아락실'의 변비 치료 효과는 부수적인 것일 뿐이에요." (김정웅 기자 cogito@)

◇“로또 급 행운의 기회는 모두에게 올 수 있어요. 여러분에게도요”

장삐쭈는 현재까지 얼굴 공개를 하지 않았다. 기자는 처음에 ‘부끄러워서’라고 짐작했다.

발기, 고환, 음경, 포경수술, 섹스…. 장삐쭈의 콘텐츠에서 자주 등장했던 소재들이다. 이렇듯 장삐쭈의 영상은 성(性)이라는 소재를 매우 자유롭고 개방적인 태도로 다룬다. 그 내용이 음란하다…고 까지 말할 수 없지만, 보통은 일상 대화 속에서 음경과 발기에 관한 얘길 잘 하지는 않으니까. 이런 소재를 주로 다루는 크리에이터라는 점이 충분히 부끄러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장삐쭈는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했다.

“성이란 게 굳이 얘기하지 않을 뿐이지, 모두가 알고 있는 거잖아요. 부끄러울 게 전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희 엄마도 ‘민철이의 포경수술’편을 좋아하시거든요. 엄마는 항상, ‘너 꼬치! 꼬치! 그거 때문에 뜬 거잖아’라고 하시면서 ‘꼬치!’라는 대사만 기억하세요. 엄마도 저 보면 떠올리시는 소재가 제게 부끄러울 이유가 없죠.” 참고로 여기서 언급된 ‘꼬치’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거’ 맞다.

그럼 신비주의인가? 그것도 아니다. 얼굴공개를 안 하는 이유의 정답은 ‘그냥’이다. 정말 문자 그대로 ‘그냥’.

▲"얼굴 비공개는 아무 이유 없어요. 그냥 안 밝히는거에요, 그냥" (김정웅 기자 cogito@)

“별로 관심받고 싶어하는 성격이 아닌데다, 원래부터 얼굴 공개할 생각이 없었어요. 더빙 콘텐츠라 얼굴이 굳이 나올 필요도 없고요. ‘신비주의를 고집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같은 질문을 받을 때도 있는데…, 애초에 신비주의가 아니고 아무 이유가 없는 거라서 그럴 때 뭐라 답변 드릴 말씀도 딱히 없더라고요.”

어차피 장삐쭈의 가족을 포함한 지인들 대부분은 그의 정체를 알고 있다. 광주 광덕고등학교의 말썽쟁이 장진수는, 이제 모교 선생님들이 ‘우리 학교에 전설적인 유튜버가 있단다…’라고 소개하는 레전드 동문이 될 만큼 널리 알려졌다고.

본인을 선망하고 있을 광덕고 후배들을 포함해, 크리에이터와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꼰대같은 멘트일 수 있지만, 인플루언서가 되려면 자신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뭘 좋아하니?’라고 물었을 때 즉시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플루언서란 ‘남에게 나의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잖아요. 나의 에고(자의식)가 강해야 나를 따르는 ‘팔로워’들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팔로십이란건 씨엘이나 지드래곤처럼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뚝심이 있는 사람에게만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관이 뚜렷하기 위해선 당연히 ‘나’는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그럴 수 있으려면 반드시 ‘나’를 공부해야죠.”

▲"인플루언서가 되려는 자, 먼저 자신을 공부해야 합니다." 모처럼 '엄근진'을 빨았던 장삐쭈. (김정웅 기자 cogito@)

이렇듯 뒷날의 크리에이터 및 인플루언서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하는 장삐쭈. ‘급식생’을 필두로 한 취업난을 다룬 그의 콘텐츠에서는 ‘88만 원 세대’ 특유의 절망적인 페이소스가 강렬하게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장삐쭈는 라디오 콘텐츠에서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청년들의 고민상담을 들으며 그 아픔을 함께 공감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왜 인터뷰에서 젊은 세대에게 ‘답이 없으니 로또나 사시라’고 말했을까? 들어보면 수긍할 만한 이야기다.

“지금 모든 젊은 분들이 정말 많이 힘들고, 고생하고 있는 안타까운 시대에요. 정말 저를 비롯한 저희 세대에는 로또 급 행운이 아니면 답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에요. 근데, 제가 말한 로또라는게 진짜 로또라는 복권에 한정해서 말한 건 아니에요. 저도 어떻게 보면 우연히 ‘로또를 맞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잖아요.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 기회는 찾아올 수 있습니다. 저처럼요. 모두 해낼 수 있을 거에요. 이 힘들고 답 없는 시대에, 모두 로또 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래도 더빙 콘텐츠 크리에이터와의 인터뷰인데 기사에 그의 목소리를 싣는 게 가장 그의 모습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해서 특별히 준비했다. 한 번씩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