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상업적 관광지화로 임대료, 물가가 치솟아 원주민이 쫓겨나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의 폐해가 정점에 달했다. 과도한 관광객 유입에 따른 생활·주거 불편으로 주민이 내몰리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의 병폐도 극에 이르렀다. ‘베네소더스(Venexodus·Venezia와 Exodus 합성어)’라는 거리 현수막이 적시하듯 많은 주민이 베네치아를 떠났다. 1950년대 17만 5000여 명이던 베네치아 인구는 이제 5만여 명에 불과하다.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바르셀로나 주민도 마찬가지다. 지난 8년간 바르셀로나 시내 중심가 인구는 11% 감소했다.
“관광객은 꺼져라!”라는 외침은 외국 관광지에서만 들려오는 것이 아니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 마을부터 제주까지 전국 관광지에서 관광객과 관광업체를 향한 불만의 아우성이 쏟아진다. 북촌 마을의 적지 않은 주민이 관광객 소란과 추태를 견디다 못해 동네를 떠났다. 가회동 인구가 5년 전보다 14.2% 줄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집 앞에 찾아와 대문 안을 들여다보고, 초인종을 누르고, 경보음이 울려서 개들은 종일 짖습니다. 더는 찾아오지 말아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제주에 사는 이효리 남편인 가수 이상순이 7월 19일 SNS에 올린 당부다. 급증하는 관광객 때문에 여수 시민의 59.5%가 물가인상을 경험했고, 61.2%는 생활·주거환경이 나빠졌다고 했다. 여수시민협의회가 6월 19일부터 7월 4일까지 시민 3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관광지 주민을 삶의 터전에서 내쫓고 관광지를 환경오염과 범죄로 병들게 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관광업체의 이윤 추구만을 위한 끝없는 탐욕과 함께 여행자의 즐거움과 욕구 충족에만 초점을 맞춘 여행자 중심 관광문화가 주민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관광지를 파괴한다.
사람들의 관광 인식과 태도를 좌우하는 미디어의 책임 역시 크다. 광고 등 이윤 창출을 위해 KBS ‘배틀 트립’, jtbc ‘뭉쳐야 산다’를 비롯한 TV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신문, 잡지 등도 경쟁적으로 먹고, 마시고, 즐기는 여행자 욕구 충족만을 강조해 관광지 오염과 원주민 고통을 배가시킨다.
이제 문제 많은 여행자 중심 관광에서 벗어나야 한다. 관광지의 삶과 문화를 존중하고 자연을 보호하며 여행자가 사용한 비용이 주민 생활에 도움이 되는 ‘공정 여행’으로 관광 패러다임이 전환돼야 한다. 공정 여행은 여행자뿐만 아니라 관광지 주민의 행복도 담보하는 지속 가능한 여행이다. 여행자도 즐겁고 관광 지역 공동체도 살리는 것이 공정 여행의 본질이다.
물론 영국사상연구소가 펴낸 ‘논쟁 없는 시대의 논쟁’에서 제기했듯 공정 여행이 자유와 모험을 추구하는 개인의 행동을 제한하고 여행을 도덕적 활동으로 포장해 재미와 쾌락을 나쁜 것으로 격하시키고, 나아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리는 일을 막아 서로의 차이를 영속화하는 반인간적 여행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공정 여행은 관광하는 곳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진짜 여행을 경험하게 돼 여행의 질이 훨씬 높아질 뿐만 아니라 관광지 주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 공정 여행은 때로 불편할 수 있다. 여행의 영어 단어 ‘Travel’의 어원은 고통이나 노고를 의미하는 ‘Travail’이다. 조금 불편해도 공정 여행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것이 “관광객은 꺼져라!”라는 관광지 주민의 절규를 멈추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