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완서(1931.10.20~2011.1.22)는 넉넉한 인상이었다. 그래서 별 어려움 없이 살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그녀는 유난히 개인적인 아픔이 많은 작가이다. 전쟁으로 오빠를 잃고 병마로 남편을 보내고 교통사고로 자식을 묻었다.
이런 아픔은 박완서 문학의 근간을 이룬다. 오빠는 한국전쟁 때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한 채 돌아와 숨졌다. 그것은 그녀에게 커다란 충격이었고 문학을 시작하는 이유가 된다. 이후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개개인의 상처와 일그러진 초상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나목’, ‘엄마의 말뚝’이 그런 작품이다.
1988년 5월에는 남편을 잃고 8월에는 아들을 떠나보낸다. 그 충격으로 절필을 하고 부산의 수도원으로 내려간다. 하늘을 원망하며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글을 쓴 뒤 더욱더 천주교에 귀의해 안정을 찾고,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너무도 쓸쓸한 당신’ 같은 자전적 아픔을 통해 삶의 관조를 드러낸다.
그렇다고 그녀가 체험적인 아픔에만 매달려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분단과 개인적인 아픔을 넘어 다양한 분야로 외연을 넓혔다. ‘지렁이’, ‘휘청거리는 오후’에서처럼 산업화 이래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중산층의 물욕과 허위의식을 비판적으로 그려낸다. 또 ‘서 있는 여자’,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 등을 통해 억눌린 여성의 현실을 날카롭게 고발한다.
아픔은 인간을 종종 절망으로 이끈다. 하지만 박완서에게는 글 쓰는 일이 있었다. “글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켜주었다.”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 나오는 말이다. 박완서는 팔순을 앞둔 2010년에 “아직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남아 행복하다”며 이 산문집을 펴냈다.